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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기연(奇緣), 맹탕 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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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多數) 무협지(武俠誌) 줄거리라는 것이, 주인공이 기연(奇緣)을 얻어 절대 고수(高手)가 되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이룬다는 이야기렷다. 오늘날로 치자면 평범한 사람이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인생 역전을 한다는 뭐 그런.

 

확률은 희박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터, 기연을 만나 고수가 된다, 로또 1등이 된 다고라, 실낱같은 희망으로라도 나름 일어날 수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무협지의 그 흔한 줄거리는, 정말 적어도 내겐 아주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운 좋게도 나는 꼬맹이 시절 기연을 얻어 탁구를 배웠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 사연을 말하자면 또 길어지니까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그렇게 기연을 얻어 절세 고수에게서 배운 탁구이건만, 다른 사람들 눈에 나의 탁구란 그저 그런 평범한 탁구, 특징이 없어 보이는, 뭐 그냥 그런 탁구로 보이는 듯.

 

그렇다. 이미 고백했지만, 나의 탁구는 물에 물탄 듯 밍밍하다는 뒷담화를 종종 들어왔다. 지금까지 나와 경기를 마친 선수들 중 대다수의 평가가 그러했다. 상대는 강력한 공격과 발 빠른 움직임의 탁구를 구사하는 반면 나는 호쾌한 한 방 드라이브도 없고, 화려는 서비스는 더더욱 없으며, 움직임이 빠르냐면 그렇지도 않고, 딱히 하는 건 없는데 상대의 실수로 먹고산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조금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니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 아니던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내온 시간이 얼마던가. 나의 탁구는 진정 맹탕인가 하며 기울인 소주가 이미 강을 이루었을지도. 그런 우울함에도 나를 지탱해 준 기둥은 수십 년도 더 전, 나의 탁구 스승님께서 내게 남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경기는 이긴다는 말을 듣는 다면 나름 경지에 오른 것이라는 말씀, 그 당시 국민학교 꼬맹이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던 내 스승님의 전언(傳言).

 

이런 배경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나의 맹탕 탁구를 다른 이에게 전수하고 있는 중이다. 흐흐흐. 선생님께서는 과연 운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이제 나의 맹탕 탁구의 전수자(傳受者)가 되신 것인데.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허름한 탁구장은 본의 아니게 폐관 상태가 되었다. 그 어떤 중원의 절대 고수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허름한 탁구장 도장 깨기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성공하다니.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물론 선생님께서.

 

, 나의 은사님이자, 첫사랑이자, 이제는 제자가 되신 선생님께서는 과감하셨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라면, 미래를 위해 통 크게 당신의 계획을 조금 앞당기신다나.

 

선생님께서는 명예퇴직을 신청하셨으며, 퇴직하시면 소일거리 삼아 하려던 카페를 조금 일찍 여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셨다.

 

그래서 허름한 탁구장 못지않게 허름한 곳의 작은 상가 점포를 하나 구입하시고, 거기다가 탁구대를 들여놓으셨다. 그러니까 결론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별 영향 없이 둘이 탁구를 연마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로 허름한 탁구장이 폐관한 탓에 한동안 탁구 연습을 못한지라 기초부터 다시 연습해야 했다.

 

사람들은 게임에서 지고나면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젊어서 잘 움직이네, 서비스를 못 받아서, 상대의 공이 안 나와서, 상대의 힘이 좋아서, 회전이 엄청나서, 그날따라 컨디션이 엉망이라, 러버 교체 후 적응이 되지 않아서, 등등. 맹탕 탁구 창시자인 내가 보기엔 기초가 부족해서인데, 차마 맹탕이 뭐라 말 할 처지는 아니고.

 

강력한 하회전 서비스에 이은 3구 공격.

 

일단, 강력한 하회전 서비스를 짧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포인트. 내 서비스는 상대에게 절대 공격당하면 안 되는 것. 상대가 1부 선수건, 초보 아주머니든 꼼짝없이 보스커트(both cut)로 리시브 하게끔 강력한 하회전 서비스를 짧게, 테이블 여기 저기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연습, 연습.

 

그렇게 보스 커트로 넘어온 공을 백핸드 드라이브, 포핸드 드라이브로 넘기기, 일단 넘기기. 위력이 없어서 상대에게 얻어맞아도 괜찮음. 자유자재로 넘기게 될 때, 위력이라는 덤을 얻으리니 넘기는 요령을 터득할 것. 이것은 탁구 재능에 따라 한두 달에 깨닫는 이도 있고 몇 년이 가야 터득하는 이도 있는데.

 

선생님이 누구시던가. 수학을 가르치는 분 아니던가. 이 분의 특기 중 하나는 규칙 찾아내기. 하회전 공에 대한 드라이브 연습을 하면서 벌써 규칙을 발견하신 듯. 상대가 나의 강력한 하회전 서비스에 대해 꼼짝없이 보스 커트를 한다는 규칙이 파악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는.

 

상대는 강한 하회전 공에 대한 드라이브 공격 능력이 떨어진다. 시도를 안 하거나 한다 해도 열에 일곱은 네트행이거나 아웃. 그러나 나의 드라이브 공격은 열 중 여덟은 성공 한다. 비록 위력이 없어서 종종 역습당하지만, 그래도 점수로 보면 이익, 내가 공격을 시도해서 점수가 될 가능성이 반반이라도 아니 64라도 시도하면서 기술을 향상시켜야 할 판인데, 남는 장사라면 시도 안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상대의 하회전 서비스-나의 보스 커트-상대의 보스 커트-나의 드라이브 공격. 아니면, 나의 하회전 서비스-상대의 보스 커트-나의 드라이브 공격. 나는 무조건 드라이브 공격을 한다. 이건 레슨이다. 돈 주고 배워야 할 정도로 소중한 연습인데, 게임을 통해 상대가 내게 레슨을 해주는 형국이라니.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 백핸드 드라이브, 반복, 반복, 숙달!

 

이런 규칙을 발견하신 선생님. , 등골이 묘연해진다. 초보가 이런 것을 파악 하다니. 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내 모든 것이 털리는 이 느낌은 뭐지. 힘이 쭉 빠진다. ! 힘을 빼는 경지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 관문을 허투루 넘어간 사람들 중 고수의 반열에 오른 선수가 있던가.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탁구 초보 동호인들께서는 이 동네를 그저 패키지 관광하듯 기념사진 몇 장 찍고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기억하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다른 마을로 떠난다. 이 마을에서 짧으면 1, 길면 3년 정도 살기를 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훌쩍 떠나 버린다. 여기서 벌어진 기본기 차이가 결국은 실력 차이를 낳으며 그 실력차이는 훗날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곳인데.

 

나는 소망한다. 선생님께서 이 시련을 잘 견디시기를. 그 지루함과 잘 친해지시기를. 긴 시간을 한 길로 정진하시기를. 무사히 등반을 마치시고 하산하시기를.

 

그리고 또 소망한다. 이 고개가 가파르고 험난하기를. 그리하여 선생님께서 체력을 다 소진하고 주저앉을 정도로 기진맥진 해지시어 쓰러지시길. 부디, 힘이 빠진 상태에서의 스윙을 깨달으시기를. 힘을 빼고 스윙을 하는 것의 요체를 터득하는 것은 탁구의 십이경맥(十二經脈)이 트이는 일. 이 고비를 넘기는 사람에게 따라오는 탁구의 보상을 부디 성취하시기를.

 

 

[이 게시물은 고고탁님에 의해 2020-11-23 07:25:0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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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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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님의 댓글

no_profile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와!
강벽님께서 오래간만에 좋은 글을 올려 주셨네요!
넘 감사드리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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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미님의 댓글

no_profile 토오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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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5님의 댓글

no_profile 나름대로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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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등님의 댓글

no_profile 백하등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값습니다~
걍벽님의 글에서 정말 많이 배웁니다.
글을 읽는 재미 뿐만 아니라, 무었이 중요 한지를 짚어 주시는 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시간 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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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등님의 댓글

no_profile 백하등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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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탁님의 댓글

no_profile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진할려면 꾸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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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천재...님의 댓글

no_profile 탁구천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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