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돌파] 극복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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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어느새 프로 형님의 탁구 클럽이 문을 열었다. 프로 형님이 손수 쌓아 올린 4층 건물이 완성되고 거기 4층에 탁구장이 들어선 것이다. 처음부터 탁구장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매우 정교하고 합리적인 공간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상쾌한 공기, 쿠션 좋은 마루, 넓은 주차장, 완벽한 샤워시설과 라커. 휴게실과 벽면 아래의 긴 의자 등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 허름한 탁구장에 버금가는 따스한 은자촌이 하나 더 생기는 듯하여 상당히 기쁘다.
가만 보면 프로 형님은 나름 고수인듯하다. 비록 몸치라 탁구는 고수 수준은 아니시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인 금융 분야에서, 그러니까 엄밀히 이야기해서 돈 쓰는 방면에서는 초 고수인듯하다. 이런저런 연유로 종종 만나게 되는 분 중에 제법 재력이 된다는 분들을 보면 대개가 돈 쓰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만약 어르신이 탁구를 즐기는 분이라면 나는 농반진반 말씀드린다. 탁구도 레슨받아서 느는 것처럼, 돈 쓰는 것도 레슨받으면 실력이 늘 것이니 돈 쓰는 방법을 레슨받으시면 잘 쓰실 것이니 제게서 레슨받으시라고. 탁구에서도, 자신만 고수가 되려고 애쓰면 그건 험난한 길이지만, 누군가를 고수로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고수가 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 돈을 쓰려고 보면 답이 없어 보이지만, 이 사회 모두를 위해 쓰려고 하다 보면 아무리 많은 돈도 금방 없어지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두 탁구 클럽이 벌일 교류전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진작에 그 계획이 발표되어 시행을 앞둔 이 교류전은, 자기가 소속된 동호회와 관계없이 허름한 탁구장 아니면 프로 형님 탁구장 중 어느 하나의 탁구장에 소속을 두고 친선경기를 해서 그 결과를 모조리 컴퓨터에 입력해서 랭킹을 가린다는 그야말로 IT 코리아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본격적으로 교류전을 시해하기 앞서서 허름한 탁구장과 프로 형님 탁구장의 수준을 비교 평가하고, 실력 평준화를 위하여 몇몇 선수들이 종종 두 탁구장을 오가며 친선 경기를 하곤 하는데, 겸사겸사 이번에 나도 살짝 얹혀 가기로 했다.
프로 형님의 탁구장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탁구를 위해 완벽한 체육관 그 자체. 거기서 운동하는 분들과 어울려 몇 게임을 했는지 모르겠다. 체력이 어느 정도 소진할 때까지 쉼 없이 게임을 했다. 역시 내 체력이 가장 먼저 바닥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은 열심히 교류전 중이지만 나는 휴게실로 나와서 물 한잔 마시며 다른 분들의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다.
수준 높은 경기를 관람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상력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탁구, 테이블 위에 네트를 쳐놓고 공을 넘기며 승부를 가리는 경기. 네트를 치고 하는 경기라는 면에서, 테니스, 배드민턴과 비슷하고, 또 배구와도 대략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흠, 그런데 네트를 두고 벌이는 경기의 특징 중 하나는 네트를 넘어오자마자 공을 넘기는 것이 절대 유리할 것 같다는. 공이 내 쪽으로 넘어오자마자 공격하거나, 내 쪽으로 넘어오자마자 막아서 넘기거나, 하여간 넘어오자마자 다시 넘기는 것이 절대 유리할 것 같은데, 어디 다른 유사한 종목들도 그러한 것인가. 음. 테니스, 배드민턴, 배구 모두 그럴 거 같다는 결론. 할 수만 있다면 넘어오자마자 넘기면 유리할 거 같다는.
그래서 중국 탁구는 빠른 타이밍에서 공을 넘길 것을 주문하는 것인지. 넘어오자마자 넘기면 유리하니까 그런 것인가. 결국 타법이나 폼이라는 것은 공을 넘기기 위한 수단이니 빨리 넘길 수 있는 타법이나 폼을 갖추면 대단히 유리하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 쉽지 빨리 넘기려면 공이 어떤 공이 어디로 올 것인지를 미리 알거나 예측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넘겨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공을 넘기면서 내가 넘긴 공이 어떻게 다시 넘어올 것인지를 알 수 있다면 그렇다면 빨리 넘기는 것이 더 쉬워질 수 있겠는데. 공을 넘겨주면서 넘어올 공을 예상할 수 있는 경지라. 상대의 실력과 상대의 민첩성, 준비 동작 등을 염두에 두고 내가 넘기는 공의 성격을 고려하여 내게 돌아올 공을 종합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가능해지려나.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며 여행을 하고 있고, 눈앞에서는 선수들이 흥미진진하게 랠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연결이라. 연결. 참으로 잘들 연결하는 선수들. 탁구는 연결의 운동인가. 긴장감 넘치는 맞드라이브 장면은 탁구 경기 관람의 고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진대. 연결의 필수 요소는 무엇인가. 그렇구나.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필수구나. 실수하면 연결이 끝나는 것이니 연결 탁구를 구사하려면 실수하지 않고 넘겨야 하는 것. 그렇다면 내가 대충 연결해서 넘겼는데 상대가 공격해 와서 연결이 끝나는 상황이라면 어찌해야 하지? 오호 그럴 때는 막아서 연결해야 하니 수비 능력이 좋아야 또 연결이 계속될 수 있구나.
연결이라 연결. 참으로 어려운 명제로세. 인간에게 연결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자. 연결, 인간에게 연결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닐는지. 관계의 인간이라.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한편으로 그런 것 같기도 해 보이는데. 인간 사회라는 것이 인간관계가 얽히고설켜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만약 이 지구 상에 모든 인간이 사라지고 오직 나 혼자만 남아 있다면, 그렇다면, 사랑, 정의, 평화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데. 그런 추상적인 단어들의 의미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닌가. 흠, 그러하네. 세상의 많은 추상적인 단어들은 복수의 인간이 존재해야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수많은 관계. 사람은 나이가 들고 늙어가지만, 관계는 나이가 들지 않는 것이구나. 사람은 명멸해도 관계는 지속하는 것. 인간의 역사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기록한 것인가.
탁구도 혼자서는 경기할 수 없는 것. 그 모든 경기라는 것이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 경기라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의 또 다른 결과물인가. 그렇다면 경기의 승패는 무슨 의미인가. 승리한다고, 패한다고 해서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승패란 그저 관계에 딸려오는 꼬리표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꼬리표가 아니라 그 꼬리표를 달고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 탁구 경기란 경기한다는 것 자체가 귀한 것이지 승패는 꼬리표와 같은 것이니 경기가 끝나면 떼어서 휴지통에 넣어야 하는 것 일지도. 함께 탁구 경기를 할 상대가 있다는 것, 상대방과 그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보물 같은 것인가 본데.
생각이 이리저리 엉키는데, 누군가 내게 한게임 하잔다. 또 얼른 나가서 즐겁게 경기를 치른다.
그렇게 몇 게임을 더하고, 또 쉬고, 또 한게임 더하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다. 마룻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고 싶은 심정이 들 때 나의 모든 경기는 정리되었다. 그걸로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교류전이 끝났다.
왜 교류전을 하는가? 이 물음의 답을 확인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류전을 마치고 근처 시장골목 고기집으로 몰려갔다. 불판에 삼겹살이 올려졌고, 잔에 그 흔한 소주가 채워졌다.
오늘 있었던 교류전 경기를 또 안주로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탁우들. 인간관계란 이런 것인가.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고, 약간은 오버하고, 때론 진지해지다가 다시 멋쩍은 농담을 나누는 일. 행복은 이런 것인가.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
한 잔 소주에 안주 한 점. 그리고 탁구 친구들.
술 한잔에 인생이, 사랑이, 추억이, 젊음이, 시간이, 우주가 녹아 있는 것인가.
머금은 소주가 달콤하다. 밤이 깊어간다.
댓글목록
고고탁님의 댓글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탁구를 치다보면 온 우주의 기운이 나한테 모여있죠.
한국의 탁구문화는 그 정도로 재미있고, 왁자지껄하죠.
술과 안주와 탁구가 어울린 삼겹 문화는 타국에서는 맛볼수 없는 멋진 세계죠.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한참 보면 빈티가 흐르는 것 같지만 한참을 보면 풍요롭고 떠들석합니다.
그래서 I love Korea입니다.
술을 끊은지 일주일되갑니다.
방금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맥주 한캔있더군요.
한캔 먹는다고 금주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잊어버릴때쯤 냉장고 열고 꺼내서 마실랍니다.
아 내 자유의지로 탁구칠때 탁구치고 술마시고 싶을때 술마시고 그러고 싶은데,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과의 약속이 많아지면서 그런 것도 마음대로 못하네요.
나이 듦은 삶은 항시 자제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명수사관님의 댓글의 댓글
명수사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캔 먹는다고 금주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모금의 술이 술을 불러요
나 당장이라도 술 끊을 수 있어 하면서 계속 마셔대는 애주(?)가님들의 괴변
악은 모양이라도 닮지말라는 말처럼 금주 약속을 하셨다면 주위의 술 부터 치우세요
진심어린 조언입니다
한컴님의 댓글
한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쓰시는 글 들이 실화를 토대로 한 글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실감나고 현실감이 있어 더욱 재미있습니다.
이런 제 주변의 내용들을 다른 사람도 하고 있구나 하면서도,
일기처럼, 대화하는 것처럼 게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탁구인으로서 정말 너무 좋습니다.
다음 글을 또 기다려봅니다.
樂卓而空님의 댓글
樂卓而空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닉네임처럼 "좋아는 하지만 꽝" 이요, 별볼일 없는 수준이니...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분들이 부럽소이다.
정다운님의 댓글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강벽님께서 이렇게 좋은 탁구 소설을 올려 주셨네요!
아주 잼있고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글이라 추천합니다,,,,,
발튼너님의 댓글의 댓글
발튼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탁구 소설을 쓰고 계신 분의 필명은 강벽이 아닌 걍벽입니다~ ㅎ
스카이핑퐁님의 댓글
스카이핑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강벽님의 탁구 연결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일상생활이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