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돌파] 탁구장 풍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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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전부터 전화가 바쁘다. 아침 겸 점심을 적당히 먹고 느긋하게 움직이려는 나의 계획에 밭다리 걸기를 한다. 핸드폰 저쪽에서 나름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탁구장으로 나오란다. 새해가 밝자마자 탁구장에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몇 가지 뉴스와 함께 지금 대단한 경기가 시작되려고 하니 얼른 나오란다.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탁구장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탁구장에 들어섰더니, 오호 이런, 근사한 광경이 연출되려는 순간이렷다. 우리 코치가 게임을 하려는 모양인데 상대는 앳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 코치와 경기를 하려는 저 선수는 누구인가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왜 경기를 하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한 상태로 관중석으로 향하니 전화를 준 후배가 자기 옆으로 나를 부르면서 살짝 귀띔을 준다.
흠, 그렇게 된 것이로군. 레슨 대기자가 밀리는 것을 견디다 못한 코치가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우리 코치에게 레슨을 받고자 하는 레슨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레슨 코치를 한 명 더 두기로 했고, 바로 그 새로 오는 코치가 지금 경기를 하려는 선수라는 것인데.
어디 간만에 안구 정화를 해볼까 하며 관람 모드 돌입. 둘의 경기가 시작된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선수와 서른 전후 나이의 코치라. 과연 코치가 적수가 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려는데. 경기가 시작되자 나의 예상은 처참히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눈앞에서 놀라운 경기가 펼쳐진다. 먼저 우리 코치의 장기이자 특징인 공격적인 리시브가 빛을 발휘한다. 공격적인 리시브는 우리 코치가 레슨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거기다가 우리 코치의 핵심 병기 백핸드 드라이브가 작렬하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모양새. 흠, 우리 코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중국 선수와 매우 비슷하게 경기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중 장이닝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우리 코치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아가씨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선수와 경기를 해서 이토록 우세한 경기를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상대 선수도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주었지만, 우리 코치는 그런 상대 선수의 약점을 교묘히 괴롭히며 점수에서 우위를 점해나가는 모습이란. 연결이 이어지고 드라이브가 난무하고, 선수들의 경공을 바로 앞에서 관람하는 즐거움이란. 관중들은 점수 한 점 한 점마다 박수 치고 환호하고 격려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경기가 마무리되고, 우리 코치는 새로 온 코치를 이 허름한 탁구장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오호 새로운 코치라. 이것이 일단 새해의 빅뉴스라는 것인데. 작년 연말엔가 얼핏 흘러가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우리 코치를 누가 법원에서 봤다나 뭐라나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단정하게 정장을 하고 법원에서 봐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나.
암튼, 새로 오는 코치는 우리 코치의 대학 후배라는 듯. 우리 코치 말로는 자신이 정말 아끼는 후배인데 삼고초려를 해서 모시고 왔다는 덕담. 이에 화답하는 새 코치는 인사말에서 정말 존경하는 선배가 우리 코치라서 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뻤다고. 이 선수들이 서로 대본을 짜서 온 것인가. 하여간 어여쁜 코치 둘이 탁구장에서 레슨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므흣한데.
왜 우리 코치에게는 레슨 대기자가 줄을 서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혹시 우리 코치의 미모가 뛰어나서일까. 흠, 남자 회원들에게 전혀 영향을 안 준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수의 여사님도 레슨 대기를 하는 걸 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듯싶고. 모든 코치는 자신에게 배우는 분들의 실력이 향상되기를 바라며 지도하겠지만, 우리 코치에게는 뭔가 2% 다른 점이 있어 보인다.
이리저리 생각해서, 내 개인적으로 우리 코치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우리 코치는 탁구장에서 탁구를 즐기는 것을 하나의 문화 형태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을 구성하는 문화라고 보는 것인 듯. 그래서 본인이 탁구를 지도하는 일은 배우는 분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철학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종종 대화해보면 젊은 사람이 생각이 깊고 따뜻한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여사님들도 우리 코치를 친딸처럼 아껴주는 것인지도.
우리 코치가 처음에 왔을 때, 어느 여사님께서 코치에게 부탁하기를 부수가 올라갈 수 있도록 탁구를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코치는 이 여사님에게는레슨 시간 내내 리시브와 막아내는 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이 여사님은 정말 한 부 올라가셨다. 그 사건 이후 여사님들은 코치의 지도대로 훈련에 임했고 몇 분 여사님이 입상을 했다. 그러자 이 작은 도시에 레슨 잘하는 코치가 허름한 탁구장에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여사님들이 갈망하던 부수 올리기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드리고 나서는 그 여사님들에게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본기 훈련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부수를 갈망하던 여사님들이 순한 양처럼 코치의 지도에 따라 기본기를 연마한다는 것이. 우리 코치는 그 여사님들의 연령대와 건강 상태, 부수에 대한 열망, 탁구에 대한 관점 등등을 파악하여 여사님들 건강에 도움이 될 정도의 강도로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개성을 가진지라 배우고자 하는 부분도 제각각이다. 우리 코치는 당사자가 배우고 싶어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지도하되, 실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훈련해서 실력 향상을 이룬 후, 기본기의 중요성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쁜 폼을 원하는 초보분에게는 예쁜 폼을, 리시브를 잘하기를 원하는 분에게는 리시브 요령을, 포핸드 드라이브가 강력해지기를 원하는 분에게는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를, 백핸드 드라이브를 원하는 분에게는 또 백핸드 드라이브를 알려준다.
에피소드 하나를 말하자면, 우리 코치가 레슨을 하면서 어떤 분에는 드라이브를 할 때 상체를 숙이시지 말라고 하고, 다른 분에게는 상체를 좀 숙이시라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왜 그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하는가를 궁금해하던 한 분이 우리 코치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분들은 그렇게 해야 위력적인 드라이브를 칠 수 있는 자세가 나온다고 대답했다던가. 너무 숙이는 분에게는 상체를 숙이지 말라고 한 것이고, 상체가 너무 뒤로 넘어가는 분에게는 상체를 숙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하긴 배우는 처지에서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지도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그러면서 틈틈이 레슨 받는 분들을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선수들의 동영상과 비교해보며 그 기술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도 지도해준다. 코치가 말하길 여사님들은 중학교 여자 선수 정도를 모델로 삼고 남자 분들은 고등학교 여자선수들을 모델로 삼으면 적당하다는 이야기. 나아가, 설명하고 레슨하면 그냥 끝이 아니고, 연습경기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지 틈틈이 체크한다. 심지어 연습경기 장면을 촬영해오라고 하고, 레슨 시간에 배운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보며 연구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어느 기술을 간절히 장착하고자 하는 분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것인데. 덧붙여 항상 생긋 웃는 미소와 칭찬을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철학을 전공했다는 우리 코치, 철학적 생각을 탁구에 접목한 것인가.
우리 코치는 일대일 개인 레슨보다 단체 훈련을 더 선호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온 분들에게는 단체 훈련 프로그램을 활용하실 것을 권해 드린다. 이미 이 허름한 탁구장의 훈련 프로그램은 탄탄히 자리잡혀 있다. 그런데 반드시 코치에게 배워야 한다는 분이 계시고 특히 다수의 여사님들은 반드시 코치에게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지라, 결국 새 코치가 오게 되는 결과가 된 것인데.
우리 코치가 레슨받는 분들에게 이야기하는 지론은 시합에 사용하지 않는 기술은 배울 필요가 없고, 배운 기술은 반드시 시합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초심자들이 이 허름한 탁구장에 오셔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기까지는 물론 탁구장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 허름한 탁구장은 초심자가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참아주지 않는다. 누구라도 놀고 있는 분을 불러내서 연습하거나 기필코 한게임을 하거나 해서 충분히 땀 흘리며 운동하도록 배려한다. 이런 문화는 혹시 당신도 탁구 매니아가 되어서 고생 좀 해보라는 의미인가.
그런데 우리 코치가 새 코치를 영입 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우리 코치가 장차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할지도 모른다는 비밀스런 이야기. 그래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하므로, 자기의 레슨 시간을 좀 줄이고, 후배와 연습도 할 겸 해서 새 코치를 영입한 거라는 뉴스가 들리는데. 과연 그러한 것인지. 코치가 훈련하는 모습을 관람할 것을 생각하니 그 또한 기대되는 일이고.
그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새해에도 변함없이 이 허름한 탁구장은 훈련 열기로 뜨듯하다. 열심히 게임하는 분들, 맞드라이브 연습하는 분들. 몇몇이 모여서 토론하며 훈련하는 분들, 단체 훈련하는 분들, 변함없이 한쪽 구석에서 K와 훈련하는 분들. 나같이 휴게실에서 주로 놀다가 가끔 한게임 하거나 남의 게임에 가서 심판 보다가 막걸리 한잔하려는 분들.
그렇게 휴게실에서 서성거리는데 또 감사하게 누군가가 내게 게임을 청한다. 안면이 있는 분. 오호 오늘 나는 이분과 연이 닿아 탁구를 마친 후 시장 골목에서 막걸리를 한잔 기울이게 되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어느 정도 구력이 향상되셨을까나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습 경기에 나서려는데, 탁구장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온다.
오호,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탁구장으로 들어오는 분의 외모가 범상찮다. 오옷, 40대 정도로 보이는 분이 들어오시는데, 꾸미지 않았어도 절로 그 미모가 돋보인다. 이 허름한 탁구장에 미묘하게 얽히는 기가 느껴진다. 그 찰나의 순간 기존 여사님들이 내뿜는 약간의 질투와 남자 회원들이 속으로 외치는 환호성. 운동하러 오셨다는 이야기에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K를 들이밀어 드린다. 얼떨결에 나선 K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연습 모드에 들어가는데.
이런, 이 분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 K와 주고받는 포핸드롱 몸풀기의 수준이 취미로 배우신 것은 아닌듯하여 K에게 살며시 눈 신호를 보내니 K의 답변이 고개를 끄덕. 아하 선수 생활을 하신 분이로구나.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시 본래의 훈련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하려던 게임에 즐겁게 임한다. 탁구대 앞에서니 탁구장이 작년보다 약간 더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인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이곳, 누가 이 탁구장을 허름하다 할 것인가.
댓글목록
날으는꽃돼지님의 댓글
날으는꽃돼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탁구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시냇가님의 댓글
시냇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이 오랫동안 올라 오지 않아 걱정 했었습니다.
날로 흥미 진진한 이야기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고탁님의 댓글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가님이 주장하는
주제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이곳, 누가 이 탁구장을 허름하다 할 것인가."입니다.
뭐 그렇죠.
꿈의 구장이죠.
세상만사 한방드라이버로 날려!님의 댓글
세상만사 한방드라이버로 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저도 그곳에 놀러가서 코치님들과 한게임 했으면 합니다. 어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