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는 어디로 흘러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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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탁구하면 통쾌한 한방, 세월아 꺼져라!
돌출러버의 대명사 TSP
스리버, 펜홀더의 신화 버터플라이
마크V의 전설 야사카
그리고 히노끼목탁의 영원한 명가 다커!
우리에겐 피스, 크로바, 챔피온이 태동하고 있었지만 막탁구용 정도다.
러버가 닳아 스핀이 먹지않아도 마르고 닳도록 썻고
찢어지면 라바쪼가리로 조각조각 덧대고,
빳다(탁구채)가 울리면 뽀개서 공업용본드로 붙여쓰고
그러다 마침내 버터사의 8mm 펜홀더에 스리버를 붙인 개인라켓을
거금(?)모아 장만했을때의 희열이 지금도 생생하다.
배고펏던 6~70년대 일제 개인라켓은 선수아니면 꿈도 못꿀 시절이다.
그시절, 러버(스폰지)두께는 보통 1.4~1.8가 대부분 일때
2mm중간(2.2~4?) 야사카(마크V)와 세이크빳다를 보고 신기해했고,
동그란 땡에다 둥그렇게 옆면이 깍인 다커(펜홀더)라켓에
아~ 세상에 이런 탁구채도 있구나 놀란 적도 있다.
지금이야 싸이고 쌓인게 세이크요, 널리고 널린게 히노끼목탁이지만..
우리에게 전국적인 탁구붐이 두번있었는데,
첫번째는 구기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여자탁구(단체전) 이에리사,정현숙의 1973년대이며,
두번째는 88서울올림픽 남단식 유남규,김기택 여복식 현정화,양영자의 1988년대다.
생활체육현장에서 탁구로 한가닥한다는 탁인(선수출신제외)들은 대부분 이시기에
입문했거나, 미쳐본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한 탁구장은 90년대 중반이후 신세대는 PC방으로 기성세대는
직장으로 뺏겨 급격히 몰락했다가 최근에 생활체육활성(건강,웰빙중시)으로 베이붐세대의
회귀가 증가함으로써 기지개를 펴고 있다.
어쨋거나 이제 탁구의 흐름도 일본→유럽→중국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펜홀더는 저물고 세이크의 전성시대다.
일펜은 추억의 저편에서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펜홀더로 역사를 세운 이에리사,
유남규, 현정화,양영자, 김택수, 유승민.. 그리고..
저변(생활체육-아마츄어)이 튼튼해야 프로선수 수준도 두꺼워진다.
중국,일본,독일의 생활체육,클럽시스템이 대단히 활성화돼있다고 들었다.
상금(현금)을 쫒는 탁구대회나 부수제로 기초가 튼튼해 지고, 저변이 활성화될까?
그저 우물안 게임로봇과 야합만 양산해 질적 수준향상은 뒷전이지 않을까?
탁구소사(요약)
20C초 영국 핑퐁볼과 돌출러버(OX)의 등장
1927 영국 런던 제1회 유럽선수권대회
1928 YMCA체육관 제1회 조선탁구대회
1950년대 핌플아웃,스폰지러버시대
1959 스폰지러버금지,러버두께 4mm이하,
러버종류:돌출러버(OX),핌플아웃(돌출),핌플인(평면)으로 제한
1967 스리버(고탄성고마찰 평면러버)탄생
1969 마크V 등장
1973 제32회 유고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 이에리사,정현숙
중국 점착성러버 첫선
1980년대 스피드글루 전성시대
1983 라켓 양면 다른색(적,흑)규정
1988 제24회 서울올림픽 유남규,김기택 양영자,현정화
1989 제40회 서독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발트너, 페르손
1997 브라이스(스피드글루효과)러버 등장
1998 ESN텐조기술, 하이텐션러버 등장
1999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과 단체전 매년 개최
2000 경기구 변경:38mm 2.5g→ 40mm 2.7g
2001 경기방식 변경:21점 5전3선승제→11점 7전4선승제
엑시옴40(ESN OEM) 국산러버 첫선
2002 오픈서비스제(프리핸드 손바닥위 16cm이상 뛰운뒤 보이게 서비스)도입
2004 제28회 아테네올림픽 유승민
2005 VOC성분의 스피드글루 금지
2008 스피드글루 전면금지 시행
2008 테너지(신세대하이텐션러버)등장
2014 경기구 변경:40 셀룰로이드공(핑퐁볼)→40+ 플라스틱공(폴리볼)
2017 독일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 마롱, 이상수(동)
위 소사에서 아시다시피 세계탁구계는
ITTF를 장악하고있는 유럽의 초기 일본독주, 중후기 중국독주 견제와 흥행을 위해
규정이 바껴왔고, 대표적으로 러버,공 규정과 스피드글루 금지다.
그 결과 힘,스핀과 랠리위주의 유럽식 세이크가 판치고 있지만,
여전히 전진 속공(드라이브)형 중펜과 세이크가 넘사벽처럼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이면엔 중국 점착성러버와 정점이전 타법, 체계적인 집중육성이 깔려있다.
결국, 탁구의 흥망성쇠는
탁구용품(특히 러버),전술,지도체계의 삼위일체와 육성투자로 판가름나는데,
탁구용품에 있어 탁구대와 공은 일정수준에 올랐으나, 라켓(목탁과 러버)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전술또한 한국형이라 볼만한 체계도 미비하고, 지도자(경험)는 있으나,
지도방식이 독선적이고 낙후(연구발전이 없는)됐지않나 감히 판단된다.
(생활체육 레슨코치들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전술연구를 할까?)
이런 환경에서 유승민의 2004 아테네올림픽 우승은 그야말로 선수의 집념하나로 이뤘기에
유성처럼 스쳐갔고 이후 펜홀더및 한국탁구의 몰락은 예견됐으리라..
일찌기 현정화선수가 91지바대회이후 개인단식서 중국벽을 넘지못한 수준차를 절감하고
현역서 은퇴한 사례가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용품에서 상위수준에 있는 일본과 독일은 늘 상위권이고,
기술수준이 상위에 있는 중국은 늘 최상위권이다.
이런 중국이 용품에서도 상위권으로 향하고 있으니 또 얼마나 장기집권 할까?
2017 독일세계선수권이나 일본오픈 역시 온통 중국판이다.
다만, 2020 도쿄올림픽대비 집중투자해온 일본의 신성들이 눈에 뛴다.
생활탁구인이 적지않은 한국탁구계가 탁구 TV중계하나 힘못쓰면서,
그렇게 세계적 기량의 선수출신 지도자들이 있으면서 탁구육성과 투자에 뭘해왔는지,
또 유승민선수처럼 벼락같이 등장한 신예나 바라고있지않는지 우려될뿐이다.
가볍게 시작한 추억담이 다소 지루한 주제로 흐른 점
강호제현의 혜량에 기대며 이만 가름합니다.
한국펜홀더의 부활을 바라며..
-한탁인-
댓글목록
Vegas님의 댓글
Vega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때를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
그 시절의 대소사가 주마둥처럼 지나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라이파이1님의 댓글
라이파이1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올리신 글을 읽으며 문득 옛 생각이 나, 잠깐 추억에 잠겼습니다. 탁구 연보 좋네요. 고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탁구계의 현실 아주 가슴 절절하게 공감합니다. 그래도 최원석 회장이 있을 때가 전성기 였지 않나 싶네요. 현재 조양호 회장은 투자를 넘 안해서..지난 4월의 코리아 오픈 탁구 대회 구경차 갔다가 국제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개최된 오픈 탁구대회에 비해 관중이 너무 없어 참가한 외국 선수들에게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탁구 대표 선수들은 으례 그러려니 했겠지만...
고려님의 댓글
고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꼭 응답하라 드라마보듯이 추억을샘솟게 하십니다.
두번째붐세대로서 동대문 문화체육관을 문지방닳도록나다녔습니다.
이열정많은 생체인이 탁구중계에 힘한번 못쓰는 현실이안타깝습니다
이차돌님의 댓글
이차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감이 가네요 저도 탁구를 입문한지가 31년 되었네요 중간에 먹고사는게 바뻐 13년동안 쉬었지만,
탁구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