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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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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생 시절에 좋아하던 시인 중에는 박인환(1926~1956)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인환 시인의 대표시 「목마와 숙녀」를 박인희씨의 낭송 영상으로 첨부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낭송이고 아름다운 시입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30번째 생일도 맞지 못하고 요절한 박인환 시인이 시를 쓴 기간은 대략 8년이고 약 70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문학사에서는 그를 전후 모더니즘의 기수라고 합니다.

제가 박인환의 시를 알게 된 것은 청아한 목소리의 가수 박인희씨의 낭송 덕분이었습니다.

박인환 시인의 조카인 박인희씨는 삼촌의 시 「목마와 숙녀」를 낭송곡으로 발표했고,

「세월이 가면」을 노래로 발표했습니다.

박인희의 낭송시「목마와 숙녀」는 저의 세대부터 아주 공감을 받아,

저를 비롯해 그 시대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박인환 시인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박인환 시인은 찬사만큼이나 비판도 많이 받은 분이었습니다.

  

탁월한 시인일 뿐 아니라 당대의 독창적인 시론가였던 김수영은

박인환에 대해서 질릴 정도로 신랄한 독설을 퍼부은 분입니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 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어떤 사람은 너의 「목마와 숙녀」를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목마도 숙녀도 낡은 말이다. 네가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이다.


김수영의 독설은 그 이후 박인환의 시에 오랫동안 통속의 굴레를 씌워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박인환은 여전히 요절한 천재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지만요.


여하튼 저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수백 번도 더 읊조렸고 그 뜻을 구석구석 파헤쳤습니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위에 가져온 것은 시의 핵심 부분입니다.

박인환 시인은 시에서 ‘기억하여야 한다’ ‘들어야 한다’ ‘마셔야 한다’ 등 결단적인 표현을 통해

삶에 대한 비극적 관념을 극복하고자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슬픔, 처량함

그리고 술에 의존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달관하는 자세로 스스로 긍정하며 위안하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슬픈 체념같이 느껴집니다.

시의 주인공은 현재의 삶을 비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삶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현실에서의 삶이 무상할 지라도

일상 속에 머물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숙명을 긍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삶의 무상과 스스로의 숙명을 수용함으로써

일상적인 삶이 주는 좌절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모든 것이 떠나가 버린 데 대한 서러움의 정서를 떨쳐버릴 수 없는 시인은

감상적 어조로 쓰러진 술병 속에서 가을바람 소리로 울고 있는 자신의 애상을 확인합니다. 

    탁구러버 표면을 복원시켜서 회전력을 살리는 영양제


추천7 비추천0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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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수님의 댓글

no_profile 강청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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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사랑님의 댓글

no_profile 꿈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인환시인의 팬을 만나니 반갑네요 저도 속초갔다올 때면 인제의 박인환 시인 박물관에 들려 그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얼굴 등 세편의 시를 꼭 감상하고 옵니다 박인한시인에게는 아들과 딸이 한명씩 있는데 아드님이신 박세영군도 시를 쓰더니 요즘은 조용하네요 70나이에 삼송리쪽에서 탁구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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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량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자량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저는 인제에 있는 그 박물관을 2012년 9월에야 처음 찾아갔습니다.
학창시절 제 친구들은 거의 모두 박인환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저도 난해한 듯한 그분의 시가 좋았지만 그중에서 「세월이 가면」이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씨가 서른 전에 세상을 뜬 걸 알고 있었기에 저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입술까지 경험한 사람의 이름을 잊었을까?
그러데 나이들어 보니 제가 기억력이 좋음에도 눈동자는 또렷이 기억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한 경우가 생기더군요.
저는 「세월이 가면」의 첫 구절이 나이들면서 갈수록 공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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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탁님의 댓글

no_profile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번에 성산포를 다녀왔는데요.
성산포에서 소원 하나 이루었습니다.
성산포 밤바다와 대작하는게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을 이뤘죠.

학창시절에 누님께서 조그만한 녹음기를 주셨는데 이 테이프를 끼고 살았죠.
그래서  성산포 밤바다와 대작하는게 소원이 되어 버킷리스트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3NI5fek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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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량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자량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생진 님의 시입니다. 저도 예전에 박인희 음반을 끼고 살았을 만큼 많이 들었습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시인은 아닌데, 특별하게도 그분의 매니아들이 제법 많습니다.
성산포에 대한 시를 참 많이 쓰신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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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원님의 댓글

no_profile 자미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시와 품평 잘 읽고 감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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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님의 댓글

no_profile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그전에는 목마와 숙녀라는 시를 무척이나 좋아 했었눈데,,,
글구, 지금이나 미래나 저는 영원히 문학소년으로 남고 싶은데
요즘은 그런 낭만이 저의 생활과 경제로 하여금 사치로 전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글과 멋진 시 영상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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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나리(wantofly)님의 댓글

no_profile 날나리(wantofl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등학교 때 별밤을 통해 이 시를 듣고 어떻게하다 녹음을 하게 되었는데 받아적기하다가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말을 당시에는 몰랐었거던요.

근데 박인환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전혜린입니다.
두사람다 요절했다는거 외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왜 갑자기 전혜린이 떠오르는지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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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돌님의 댓글

no_profile 길가에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덕분에  좋은작품  감상잘하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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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천재...님의 댓글

no_profile 탁구천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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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님의 댓글

no_profile 주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혹 장선생님은 평론가이신지요
아름다운 시만큼이나 평론도 멋지십니다.
오래전 기억속에 잠자고 있던 "목마와 숙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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