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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조와 서인들에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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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명절을 맞아 개봉되는 블록버스터급 한국영화는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이 주연을 맡은 《남한산성》입니다. 이 영화는 1636년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어 삼전도 굴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명절 연휴를 맞아 오늘(일요일) 부모님 댁에서 어머니 그리고 저의 바로 아래 동생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머니와 제 동생은 모두 나름대로 우리나라 역사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온 분들입니다. 지난주에 어머님이 어떤 노인 분들의 모임에서 병자호란과 인조에 대한 특강을 하셨다면서 그 내용은 이렇고 이런 것이었는데, 저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와 제 동생은 모두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를 조선조 5백년 역사에서 최악의 왕 중 하나로 여깁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제가 중고등학생 때 배운 역사에서는 광해군은 폭군이고 인조(仁祖)는 한자의 뜻처럼 어진 임금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 평가가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저는 여러 번 실감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절대 인조가 어진 임금이거나 뛰어난 임금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래에 유행처럼 번지던 광해군 띄우기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소현세자와 강빈 그리고 손자들을 매몰차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륜은 물론 인조와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은 명분에 대해서도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비교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조가 21세기 한국에서 맹비난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병자호란이 발생한 것이 전적으로 인조와 집권 서인들의 책임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오늘 저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열변을 토했고, 거기에 대해 어머니와 동생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필 받은 김에 제가 말한 내용을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병자호란의 발생과 그 직후에 벌어진 극도의 무기력함에 대한 책임이 인조와 집권 서인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수많은 역사책과 연구논문에서 당시 집권층의 잘못된 판단, 허술함과 무능무책임 등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어, 파헤칠수록 당시 조선이 입은 피해의 거의 모든 것이 인조와 집권층의 책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입니다. 만일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고 그때까지 집권했다면 그가 구사한 절묘한 외교정책으로 병자호란 같은 참사를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많은 학자들과 저술가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동생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르하치(努爾哈赤, 노이합적)가 이끄는 건주여진은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주변의 여진족들을 차례로 복속시켰고 1613년에 여진족 대부분을 통일했습니다. 광해군 8년인 1616년 누르하치는 국호를 대금(大金, 이하 후금)으로 정하며 건국하였고, 그 이후 명나라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때 조선은 명나라의 요청으로 명군에 원병을 보내 후금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심하에서 조선군은 후금 군대와 격전을 벌여 수많은 장병을 사살했습니다. 하지만 명군이 섬멸되고 조선군이 겹겹이 포위된 상태가 되자 원병을 이끌던 도원수 강홍립은 후금에게 항복했습니다. 강홍립의 항복은 실제로 후금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광해군의 심중을 헤아린 것이었습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적극적인 양면외교를 펼쳐 명의 의구심을 풀어주면서도 후금을 자극하지 않았고, 후금과의 교역도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인조가 집권하기 바로 전 해인 1622년 후금의 광녕 정복으로 인해 조선과 명의 육상통로는 완전히 단절되었고, 1623년 인조가 즉위한 후에도 후금은 팽창을 계속했습니다. 육상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자 명나라는 조선이 후금 쪽으로 기우는 것을 더더욱 경계했고, 후금은 명과의 전쟁을 위해서 조선과의 관계를 먼저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627년 후금이 조선을 느닷없이 침략한 것이 바로 정묘호란입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광해군이 궁궐을 짓느라 파탄 낸 재정도 복귀가 안 되었고, 방치했던 군비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화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전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묘호란부터 병자호란 사이에 약 10년 동안 조선과 후금은 혼란스러운 관계에 있었습니다. 두 나라 간의 가장 큰 갈등은 명나라와 동등한 예우를 요청하는 후금과 이를 거부하는 조선 사이의 불신이었습니다.

 

인조반정의 주역들이 정변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을 강력히 비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입으로만 척화정책을 썼을 뿐 실제로는 후금과의 적대관계를 피하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1633년 조선과 후금의 국교단절 위기도 누르하치의 대를 이은 후금의 홍타이지(皇太極, 황태극)가 조선에게 남조(명)와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며 절사의 통첩을 보낸 것입니다. 조선의 대신들은 청의 요구에 화가 치밀었지만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누르하치의 사망 후 왕위를 이어 받은 여덟 번째 아들 홍타이지는 여진족의 전통에 따라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해 선출되었고, 나이 많은 형들은 자리에 앉을 때도 왕보다 상석에 앉는 등 홍타이지가 즉위 할 당시 후금의 왕실은 전래의 부족 수준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홍타이지는 왕이었지만 8기군 중에서 2기만 지휘할 수 있었기에 그의 권력은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네토막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늘였고, 아버지 누르하치는 꿈도 꾸지 못했던 명(明)을 대신할 새로운 제국을 꿈꿨습니다. 그는 혼인을 통해 몽고와 연합함으로써 원(元)제국의 황제였던 쿠빌라이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중권 제패를 선언했습니다.

 

나이 47세이던 1636년 홍타이지는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꾸고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홍타이지가 즉위식을 올릴 당시 축하사절로 간 조선의 이곽, 나덕현 등은 그에게 황제의 예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지만 만일 군신지맹으로 황제의 예를 올리는 경우 조선으로 돌아갔을 때 반역죄로 일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홍타이지는 조선의 사신들을 벌하는 대신 그들을 귀국시키면서 자신은 쿠빌라이의 후손이기 때문에 고려가 원나라를 섬기던 것처럼 조선은 청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조를 책망하는 서한을 보내 조속한 시일 내에 회답과 함께 인질을 보내도록 명령했습니다.

 

청의 홍타이지는 명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던 이전의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은 청을 유일하게 섬겨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조선은 이제 홍타이지를 황제로 인정하고 청의 신하국이 되느냐 이를 거부하느냐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조정은 홍타이지의 서신을 묵살한 채 회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요구를 조선이 거부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해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의 조정이 취한 어리석은 정책이 병자호란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 청나라가 느닷없이 군신 관계를 요구하면서 침략한 것이 병자호란입니다.

 

물론 조선이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들을 유일한 황제국으로 섬겼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명을 배반하고 새로 청을 섬긴다는 것은 조선의 외교정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조선의 건국이념과 유교사상, 정치와 문화 그리고 사회 운영의 구석구석에 이르도록 긴밀히 짜여진 틀을 깨는 문제였기 때문에 조선의 조정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막말로 필부도 주먹질하며 협박한다고 아무에게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자신의 문화와 문명을 가지고 살던 자존심 높은 나라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보지도 않고 청을 유일한 황제국으로 섬길 수는 없었습니다. 광해군이 당시에 집권했더라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광해군시절 집권하던 대북파는 인조시절 서인들 못지않은 명분론자들이었습니다. 광해군과 대북파라고 할지라도 청으로부터 양자택을을 요구받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보낸 서한에서 “너희들의 조상이 원제국을 섬겼듯이 너희들도 대청제국을 섬기라.”고 했는데,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는 조선과 고려는 명백히 다른 나라고 원이 아니라 명을 섬기는 것이 조선 건국의 한 명분이었기에 홍타이지의 서신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망하기보다는 차라리 정도를 지키며 사직을 지키며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인조실록에 적혀 있는 당시 이조참판 정온의 말은 당시 조정이 처했던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조선이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자신들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 대신 열린 마음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예의 주시했다면, 여진족이 중원의 주인이 된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테고 훗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기는커녕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였을 것이다.”

어머님 댁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그 책의 주장은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의 시각으로 말한 것일 뿐입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시기는 홍타이지가 내몽골을 통일하고 제국을 확장한 시기기도 하지만, 산해관을 돌파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으로 진입하지 못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늘어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기상 악화로 인한 흉작, 명과의 교역 금지 등으로 인해 청국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중화의 주인이며 임진왜란 때 재조지은을 준 명제국이 천하질서를 위협하는 오랑캐를 결국 물리칠 것이라는 게 오히려 당시의 합리적인 사고였을 겁니다.

 

 만일 조선이 명을 배신하고 청을 요구를 들어줬는데, 명이 청을 토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조선은 그 즉시 망국의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당시 사람들에게 안 떠올랐을 리 없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만 해도 명은 여전히 강국이었고 천하의 중심도 여전히 명이었습니다. 청이 결국 중원의 임자가 된다는 것은 당시 사람에게는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글의 요지는 병자호란의 발발과 삼전도의 치욕은 온전히 인조와 집권 서인들만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조는 어질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은 임금이었습니다.

 

인조실록에는 삼전도의 굴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산성일기나 병자일기 등의 자료를 살펴봐야 합니다. 인조는 항복하기 전에 수시로 사람을 보내 항복할 경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며 두려워했습니다.

 

산성일기에 따르면 항복의식을 거행할 당시 홍타이지가 단 위의 의자에 앉자 인조는 진흙 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행하려 했습니다. 신하들이 읍소하며 돗자리를 깔기를 청하자 인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히 황제 앞에서 어찌 스스로를 높일 수 있겠는가?”


이걸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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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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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탁님의 댓글

no_profile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러가지 설이 있을수 있습니다만,
조선이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이 다수입니다.
예전에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병자호란 다시 읽기"도 병자호란에 대한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긴 자료니 시간을 갖고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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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40님의 댓글

no_profile 솔로몬4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쎄요. 저는 역사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국제 정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명이냐, 청이냐) 왕 노릇을 했다는게 황당하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으니 이게 왕이냐? 탄핵되야 할 사람은 소현세자가 아니고 이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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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s님의 댓글

no_profile Vega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은 마치 중국과 맞물린 현대판 사드문제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작금의 국제정세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구석으로 몰린 한국의 상황을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알수 없는데
아주 오래전의 있었던 역사의 한페이지를 헤아려 보기는 필부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 입니다!

그런데 어떤 해석이 옳은지 역사의 기록을 헤집기 보다, 기록상으로 볼때 공통점은
개인적인 견해이지만,국난이 있을 때마다 조선 왕들이 보여주는 비굴함은 극명하게 알수 있는데,
한나라를 대표하는자로 용사의 남자같은 모습은 궁녀들에게 들러쌓여 있을 때나 보여주더군요.

불과 몇명의 부하를 거느린 불량배도 자기 구역을 위해 장열하게 목숨을 버리는데
군주로서, 용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비굴함이 소인은 참을 수가 없나이다~~

``지키는 힘이 모자란다면 용감한 최후의 왕이(리더) 있어야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온나라의 백성이 구심점을 찾을 수 있겠지요.
서로의 믿음 충성 삶의 미덕과 가치관 등등....

그저 적당히 왕관 한번 쓰고 돈과 계집들 맘껏 어쩌고 저쩌고...
용감한 왕을 만드는 훌륭한 국민이 되어 보는 꿈을 꾸어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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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님의 댓글

no_profile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자량님께서 좋은글 을 올려 주셨군요!
저는 그시대에 안 살았고 역사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기에 잘은 모릅니다만
이 글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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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버님의 댓글

no_profile 오라이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도 구태에 찌들어서 어찌해서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세력을 보면
그저 뭐든 못마땅하고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홍준표 같은 정치세력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들이 전체 국민들의 20%는 된다지,,
여기에도 가끔 개소리 지껄이는 인간들도 꽤 되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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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고님의 댓글

no_profile 케이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쟁은 돈때문에 시작됩니다. 명분 아무 소용 없는 짓이지요. 인조는 못났지만 광해군이 있어도 병자호란이 났을거라는데 학자들의 의견은 같습니다.  그당시 후금의 경제사정은 심각한 상황이었고 그걸 해결할 방법은 전쟁이었습니다.
나중에 포로생환에 돈을 뜯어낸 것도 후금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거지 쓸데없이 잡아간 것도 아니지요.
결론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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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수님의 댓글

no_profile 강청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문의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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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홀드셰이크님의 댓글

no_profile 펜홀드셰이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힘이 약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국력이든 군사력이든 약하면 당합니다.
삼전도의 굴욕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진 데에는 인조반정 후 혼란상황에서 발생한 이괄의 난 때 조선의 북방 군사력이 크게 소진되어 실질적으로 대청 군사력이 매우 약해진 사실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순수하게 군사적인 부분만 바라보아도 당시 조선은 너무 허약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과는 왜란 때도 없었던 국왕이 타국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태가 발생했죠.
하다못해 조정이 다 개판치고 열심히 도망가고 있을 때 유일하게 열약했던 국방력이라도 제대로 훌륭하게 운용했던 이순신이란 인물이 있었을 때는 이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었습니다.
결국은 군사력이 약했으니 당한겁니다.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풍신수길이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진즉 눈치챈 황윤길, 류성룡이나 이율곡 등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 강화를 주장하였으나, 당시 김성일은 이렇게 말했죠.
"풍신수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이런 발언을 김성일은 아래와 같이 변호합니다.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입니다."
선조는 김성일 말을 믿었습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겠죠.

저는 지금 나라 상황이 이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 너무너무 불안합니다.
모쪼록 이 땅에 평화가 깃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적이 다시 한번 이 땅을 감히 범하거나 우리 국민의 자유와 존엄을 위협한다면 영광된 승리로 되갚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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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스리님의 댓글

no_profile 부르스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병자호란 하면 척화.주화파의 대표적인 두인물이 생각 납니다.
저는 최명길에 마음이 더 가더군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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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님의 댓글

no_profile 초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글의 요지는 병자호란의 발발과 삼전도의 치욕은 온전히 인조와 집권 서인들만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조선이 명을 배신하고 청을 요구를 들어줬는데, 명이 청을 토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
“감히 황제 앞에서 어찌 스스로를 높일 수 있겠는가?”
.....
위 글은 서인을 변호하고자 썼군요.
서인은 위 글처럼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자기세력과 양반기득권을 강화하여 세도정치를 위해 애썼을 뿐입니다.
서인이 마음을 비우고 국가나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은 그 이후 역사에서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선조나 인조는 백성이나 역사가 어찌되든 말든 자기 목슴만 구걸하듯 구걸했을 뿐입니다.
차라리 그때 자결이라도 했다면 그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 식만지시절이 없었을 가능성이 90%는 넘어 보입니다.
백성들이야 양반놈들이나 임금이 없어지는것이 오히려 좋았고,
양반놈들이나 임금은 백성을 괴롭히며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죽을까 전전긍긍 했을 뿐입니다.
장자량님은 서인의 후손인가요!!.
서인에 대한 미화는 자기자신을 죽이는 비양심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우익과 다를게 있을까요!!.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호하는것도, 또 그 후손이라는 것 만으로 죄를 묻는것도, 그런것이야말로 너무 양반적이고 소인배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적인 권력을 탐하는 무지가 제일 큰 죄악이고,,,
조선은 그 건국부터 홍익인간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합리주의를 닮아있는데 지금의 합리주의는 사적인 이기주의과 엘리트주의일 뿐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자신과 자신의 조직만 잘살자는 조폭과 같앗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순신같은 사람은 그 조직에 반역자엿고 살면 안되는 사람이었지요.
정의를 외치면서도 흑인은 교회도 못들어가게 하던 미국문화와 자신의 부귀영화를위한 출세를 최고가지로 여기는 조선문화가 우리나라 교육을 만들었고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사람들을 뽑고 있을 뿐입니다.
교육받은대로 잘하고 있으니 찬양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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