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소용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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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부감을 느끼는 말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외손주 애써 키워 놓아 봤자 , 아무 소용없다"라는 말 말입니다.
왜 거부감을 느끼는가?
사랑하는 것이 장삿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사랑은 순수해야 하지 않습니까?
친손자는 더 사랑해야 하고
외손주는 덜 사랑해야 한다 ?
그건 순수한 사랑이라고 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손자, 손주가 아니라 자식이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디 노후를 생각하고서 장삿속으로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식이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거지요.
달리 이유가 없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저는 한동안 참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내가 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일까에 대하여 말입니다.
왜?
왜?
결론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애당초 부터 주셨다라는 거였습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결론도 내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숙제는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자식을 사랑하듯
이웃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자기 자식만큼은 되지 않고 있다는 거지요.
외손주까지한테 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남의 자식이 아니라
바로 남에게도 자기 몸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고 하는데 ...
내가 내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왜 남은 미워하는 것일까?
답은 뻔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이 사랑의 마음이 위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듯이
사람이 자기 이웃을 사랑하려면
역시 주어지는 위로부터의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그게 불가능하다라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도 속으로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입니다.
댓글목록
배움이님의 댓글의 댓글
배움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 무신론자시라면 당연히 그런 귀결이 나와야 겠지요?
필연적으로...
그런데
하나님 대신에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사람을 설계한 어떤 존재라고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지만
자식의 마음과 육신의 모양을 그들 마음대로 설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치적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