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초보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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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를 칠 줄 안다면, 탁구를 좋아한다면, 스침의 미학을 모를 리 없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스침으로 비로소 탁구가 시작되고 끝난다. 공과 라켓이 스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탁구는 없다. 녹색 테이블을 마주보고 공과 라켓, 거기에 인간이 더해져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아름다움을 생산해낸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교차하지 않고 성립되는 탁구가 어디 있던가.
조금 더 폭 넓게 세상을 바라보면 더욱더 다양한 스침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다. 세상엔 스침이 차고 넘친다. 스침 아닌 것이 없다. 스침이 없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발견한 스침의 경이로움은 돌고 돌아 결국 인생으로 귀결된다. 탁구를 즐긴 줄 안다는 것은 인생이 스침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시간의 결을 스쳐가는 일이며,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삶이 끝난다는 것은 더 이상 스침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고, 더는 인연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탁구를 함께 즐길 상대를 만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숭고한 스침이요 소중한 인연이다.
마치 사랑도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스침으로 피어나는 꽃이랄까. 그 꽃밭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꽃이 첫사랑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사랑, 첫사랑. 다르게 이야기 해보자면 초보 사랑이라고나 할까. 초보 운전과 다르지 않다. 긴장되고, 두렵고, 오직 직진하며,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운전도, 사랑도, 탁구도, 누구나 그렇다. 초보 시절이 있다. 시작과 초보는 빛과 그림자랄까. 뗄 수 없다.
초보는 뭔가 어설픔을 의미한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툴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있던가. 농담인데, 사랑학과가 개설된 대학을 본 적이 없다. 인류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중요도로 본다면 틀림없이 최상위권일 터인데, 그걸 가르쳐주는 학과가 없다니. 중요한데 가르쳐 줄 순 없는 것인가. 아니면 대학에서 가르칠 의미가 없거나, 가르칠 수 없는 주제거나, 가르쳐 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첫사랑만 어설프다면 다행이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누군가는 평생 동안 사랑에 대해 어설플지도 모른다.
그 서툴었던 첫사랑의 추억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내린 결론이 있다면 사랑같이 정말 중요한 것은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사랑같이 매력적인 주제는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깨닫는 쪽이라는 데 한 표라는. 그렇다면, 사랑과 탁구에게 스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사랑이 깨닫는 일이라면, 탁구도 깨닫는 일이어야 이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인가? 배우는 것과 깨닫는 것. 이런 경우 양은 질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어느 책에서 읽은 시 한 줄로 평생의 사랑을 다한다. 시 한 편과 인생을 건 사랑이 같은 무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깨달은 이도 있나보다. 누군가는, 그저 비껴 쳐서 전진회전을 만들면 그것이 탑스핀(topspin)이라는 말에 깨달음을 얻어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물론 극소수 중 극소수가 그러하다.
지난 시간 나는 어떠했던가.
그때 선생님께서는 문제 풀이를 하시려는 듯 칠판 쪽으로 나가기위해 내 옆을 지나가시며 혼잣말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나는 굳이 들으려 한 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마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인간이 멸종한다면 그건 무지와 탐욕 때문일 것이라는 선생님의 나지막한 혼잣말이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사춘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는 중학생 생각은 간단했다.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선생님이 제시한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하는 우리 때문이라고. 네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문제만 알던 우리에게 증명을 하라는 문제는 실로 엄청나게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전환점은 바로 그 시간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 문제를 풀어보겠노라 굳게 결심을 했다.
댓글목록
존심님의 댓글
존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스쳐지나가는 접촉이라할까요?
그런 스침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 어떤 사람과 스침이 있었나요?
정치인 빼고?
인연도 계층이 있지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고요...
탁구천재...님의 댓글
탁구천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잘 보고 갑니다..................................................
정다운님의 댓글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강벽님께서 오래 간만에 탁구소설을 올려 주셨네요!
저도 좋은 탁구소설을 올려 주셔서 넘 감사드리며 잘 보고 갑니다.
은하철님의 댓글
은하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단상
스침이 없으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일어날수 있어야 인연인거죠
예의바른 사람이 좋습니다
나이와 환경과 일과 접목해서도
겉으로 차리는 예의는 금방 탄로가 납니다
그래서 성품으로 보는것이 그사람의 진가입니다
혹시나 이럴사람이 아닌데 하고 의심힌다가도
그사람의 성품을 보면 이해 할수있으니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괜이리 저도 몇자 적고싶어
그냥 단상 이라고 봐 주시길~^^
고고탁님의 댓글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첫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르죠.
저는 최성수의 "기쁜 우리 사랑"을 최고의 멘토로 칩니다.
주저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오랫만에 강벽님이 오셔서 좋습니다.
더군다나 첫글이 사랑이라니 나이가 들다보니 지난 세월이 너무 안타까워요.
저의 심정을 나타낸 글을 어제 귀국해서 인천에서 광주로 가는 도중에 신문으로 읽었습니다.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9041901809&fbclid=IwAR017fbIDY2jOpME60eBYOaKgipw3J4DMqEoppNYIUvwC_OoDUL8QquTu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