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한 방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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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이 넘은지 이제 몇 해. 결국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권고사직 대상이라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 나이에 받기엔 꽤 무거운 선물이랄까. 충격이 쉬 가시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 것인가. 패기 넘치던 청년은 이제 흰머리만 남은 중년 아저씨가 되었다. 숨 가쁘게 지나온 세월. 군복무를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결혼. 아이 아빠가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독립했고,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혼도 했으며, 이제 직장마저 잃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혼자 있는 느낌.
대략 정산을 해보자면 수십 년의 인생에 남은 것은 아파트 한 채 정도. 적자는 아니라고 위안 삼아야하는 것인가.
그토록 가기 싫던 직장이었는데, 갈 수 없게 되자, 가고 싶어진다. 아침이 와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 습관도 중독이 강한 것인가. 끊임없이 어딘가 소속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출근하지 않으니 하루가 길다. 이 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그보다 더 큰 고민은 이제 뭘 해서 먹고 사는가 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걱정.
몇 해 전부터 부장들이 정리될 것이라는 소문은 있었기에 이리저리 살 길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딱히 정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닭을 팔아야 하나, 편의점, 세탁소, 맥주 집, 식당. 대답 없는 메아리. 항상 제자리.
맥주 가게를 창업한다 해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백지 상태다. 정보가 없다. 과정도 모른다. 난감하다. 완전 초보신세다. 그러고 보니 직장 다닐 줄이나 알았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첩첩산중에 홀로 남은 심정.
자영업을 하면 열 중 아홉은 망하기 십상이고, 뭐라도 하려면 상가 점포가 있어야 하고, 상가는 보통 월세를 주고 빌려 쓰는데, 어쩌다 얻어걸려 장사가 좀 잘된다 하면 집주인이 월세를 왕창 올려서 건물주만 돈 버는 구도이고.
장사는 위치가 승부를 결정한다는데 좋은 위치는 어떻게 찾으며, 그 좋은 위치에서 어떤 업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위치가 좋으면 그에 따른 월세가 비싼데 위치는 후미지나 월세가 싼 곳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
월세를 안주려면 내 집에서 장사하면 좋은데 상가 건물이 좀 비싼가. 그렇다면 저렴한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상가로 개조해서 장사하면 될 것인데, 아무 동네나 되는 것이 아니고 주거 지역의 종류에 따라 개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초보가 알아야할 지식이 차고 넘친다.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하고 그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미장, 타일, 목조, 전기, 각종 규제와 법률, 머리가 아프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듯.
나는 절박하지만 아무도 먼저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다들 나름대로 바빠 보인다.
결국 이 나이에 직장에서 잘린 것은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한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한 방. 그게 배경이던, 놀라운 실력이던, 시류에 편승하는 갈대 같은 유연성이든, 그것이 무엇이던 내겐 부족했다. 강력한 한 방이 없었기에 회사라는 무대에서 퇴장 당한 것이다.
고백하건데 나의 탁구도 그렇다. 한 방이 없다. 한 방 드라이브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름 만족한다. 한 방은 없어도 어지간한 탁구장에 가면 고수 소리는 듣는다. 어차피 세월은 가는 것. 세월이 가면 몸도 늙는 것. 결국 더 나이 들면 한방은 추억 속의 첫사랑처럼 헤어져야하는 운명. 그보다는 연결 탁구가 중년에게는 더 효율적이라는 나름의 위안이요 결론이다.
끊임없이 연결하며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다. 계속 변화하며 상대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내고 역동작에 걸린 상대의 반대편으로 연결해서 득점을 노린다.
연결 탁구는 호불호가 갈린다. 다이어트 겸, 운동으로 탁구를 즐기는 분들은 좋아하는 쪽인 듯 . 이쪽저쪽 바삐 움직이며 충분히 땀 흘리며 즐거워한다. 특히 여성 동호인들이 더 좋아하는 듯. 계속된 연결에 탁구의 묘미에 푹 빠지는 모습. 탁구장에서 여성 회원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것은 탁구장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 연결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연결 아닌 운동이 드물다. 탁구, 축구, 농구, 배구, 야구. 운동의 가운데 맥을 짚어보면 연결이라는 큰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 더 찾아보면 세상엔 수많은 연결, 연결 연결이 있다. 연결 천지다. 그렇다. 그러나 나는 연결은 있으나 한 방이 없어서 직장에서 퇴출되지 않았던가.
연결은 되나 한방이 없어서, 퇴직하고 맥주 집을 열어볼까 하는 생각 중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는 한 방을 노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한 방 근사하게 터트려서 인생 역전을 노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소소하게 맥주 집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 거창한 사업을 도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아는가. 사업이 대박 나서 졸지에 부자가 될지.
연결과 한방이라.
나는 어떤 그릇이던가. 고민하기 여러 날. 맥주 집, 사업 생각을 접었다. 간단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역시 소심한 성격에는 연결 쪽이 제격이던가. 아니 첫사랑 덕분이다. 무지와 탐욕이라는 화두는 결국 한 방을 버리도록 설득했다. 한 방을 노리는 것은 첫사랑의 교훈과는 먼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첫사랑은 나를 인도했으며 첫사랑은 스스로 재회의 인연을 창조해냈다.
나는 모든 생각과 계획을 접고 고향의 작은 도시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도시의 아파트 한 채 값이면 그 도시에서는 월세를 적당히 받을 수 있는 주택을 구입하고, 차를 새로 사고, 텃밭을 사고도 돈이 남는 정도였다.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결정. 이 결정은 내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으며 최선의 연결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한 수 덕분에 나는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엘피스님의 댓글
엘피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계속 쭉 해피한 인생이 되시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탁구는
가능한지요?
탁구가 없다면 허전할것 같습니다
탁구광이님의 댓글
탁구광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방이 없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이뤄 올 수 있었던것이 연결 덕분이라고 생각하세요.
연결 부럽네요.
나름대로5님의 댓글
나름대로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저의 인생을 되 돌아 보아도 한방 보다는 연결의 연속이었습니다. 때로 한 방을 노리다 크게 실패하고 가늘고 길게 가는 방법을 몸으로 채득한 것 같습니다. 강벽님 반갑습니다. 강벽님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기쁘고 설레입니다.
고고탁님의 댓글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음 글을 설레게 하는게 아마도 이 문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결정. 이 결정은 내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으며 최선의 연결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한 수 덕분에 나는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첫사랑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탁구의제왕님의 댓글
탁구의제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필력에 감탄하고 내용에 또한번 빠져들게 하네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오랜만에 로그인하기 만드네요.
고복수님의 댓글
고복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탁구를 시작한지 4개월된 왕초보입니다. 우연히 걍벽님 글을 읽고 몇일전부터 걍벽님 글을 정주행 해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책으로도 발간이 된 듯 한데, 검색을 해봐도 책제목은 나오는데, 인터넷 대형서점 어디에도 판매하는 곳이 없네요..
혹시 책을 어디에서 구입 가능한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korash님의 댓글
koras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연결탁구라는 말....참 좋네요~~ 전 정말 오래 탁구를 쳤다고 자부하는데 한방이 약한 사람입니다...제대로 배우지 못해서겠지요. 그저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놀이로 쳤던 30년의 탁구인생이라... 그래도 30년쯤 치니 연결탁구는 좀 됩니다...시골에 와서 면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탁구모임에서 탁구를 치니 상대가 없어 아주 재밌지는 않지만 감사하게도 코치님이 매일 한게임씩은 쳐주시네요... 연결탁구 인생을 살다 나도 한방이 있었음 하는 마음에 11미리 특주를 샀는데요~ 확실히 한방의 힘도 좋아지는 것 같은데...무게때문인지 손장난이 어려워지네요...저도 다시 한방 마음 버리고 연결로 돌아가야 싶네요... 강벽님의 마음담은 글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이 아닌듯 하네요~ 어쨌든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