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포핸드 드라이브
페이지 정보
본문
뜬금없이 탁구 이야기 하다말고 무슨 복길이 이야긴가 했더니, 복길이가 아니고 복기(復棋)란다. 지난 경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일이라는 것인가.
K의 설명이 명쾌하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여러 가지. 그 중 초보 시절 연습 경기 후 반드시 자신의 경기를 복기하는 습관은 고수로 가는 지름길 이라는 것.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실력이 붙는다는.
많은 초보 동호인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상대를 이기려 하지만, 상대가 그걸 허락할리 없고 오히려 상대는 내 단점을 집중 공략할 것은 자명한 이치. 결국 단점이 자신의 실력인 셈. 따라서 복기를 통해 단점을 파악하고, 단점을 인정하고, 그 단점을 보완해나갈 때 초보에서 벗어나기가 수월해진다는. 그러나 인간이란 자신의 단점에 대한 인정에는 박한 것이 인지상정. 자명한 단점을 이야기 해주어도, 당사자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언이 무용지물, 대화 불가능. 고수는 조언은 멈출 밖에.
단점이라,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를 좌우한다는 것인데. 신체 장기 어디 한군데가 망가지면 목숨이 걸릴 수도 있는 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3년 정도 열심히 훈련하면 고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길을 잃었거나, 소질이 없거나, 훈련을 게을리 했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2반적인 경우.
직장을 잃고, 뭔가 장사를 해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통렬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다는 사실.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통찰.
탁구를 열심히 치다보면 고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열심히 장사하다보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말하자면 동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깨달음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의 대다수는 망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분이 드물 듯, 고수의 문도 좁다는.
아무도 자신을 고수로 만들어 주지 않는 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고수의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고수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외로움. 그런 외로움보다는 차라리 다른 사람을 고수로 만들겠다는 역 발상이 비밀의 문일지도.
포핸드와 백핸드, 공격과 방어, 서비스와 리시브, 속임수와 드라이브(탑스핀). 도대체 고수는 그것을 어떻게 구사하고 있는가. 나는 왜 안 되는가라는 끊임없는 성찰.
선생님은 이런 나의 생각을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셨다.
장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 부자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듯, 열심히 공부했어도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것을 파고들었다면 성적은 기대하기 어렵듯이, 열심히 연습한 탁구 기술이라고 해도 그것이 실전에서 활용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간파하신 듯.
역시 선생님다운 간결한 요점 파악 능력.
이런 능력자시면 틀림없이 나의 흑심도 파악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혼자 놀랐다는. 짐작컨대 선생님께서도 나름 연애 모드가 아닐까.
앞으로 한동안 나는 선생님과 가벼운 스킨쉽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흑심을 품은 연필로서, 내 연애의 윤곽선을 희미하게 스케치 해보겠다는 심산이랄까.
연애가 그러하다면, 탁구 훈련의 컨셉(concept)은 매우 사소하게, 약하게, 간단하게, 그러나 느낌은 확실하게랄까.
아주 쉽게, 매우 약하게 드라이브를 구사하기. 그리하여 탑스핀의 정의를 확실히 몸으로 체득하기. 정의 단계가 명확해야 그로부터 추론이 시작되는 법. 비록 그 위력은 보잘 것 없어도 전진회전을 주는 요령을 확실하게 터득하기를. 그리하면 거기서부터 가지가 뻗고 이파리가 무성해지며 시간이 지나 풍성한 과일이 열릴 것이니.
선수들의, 고수들의 드라이브는 잊을 것. 고도한 수학 세계는 잊을 것. 힘없이, 약하게, 사소하게, 간결하게 구사하는 드라이브 연습. 이제 구구단 외우듯. 기초를 정확히, 간단히, 간결하게. 가볍게 공에 전진회전을 주기. 공에 전진회전을 줄 때 클릭 감각을 몸이 느끼기.
누군가는 들이댄다, 누군가는 연애한다, 누군가는 꼬신다. 이런 것은 미래의 일이라 여기고, 사소하게 만나고,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그리워하며 자유롭게 애정이 싹틀 일.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그것이 추억이 되기를.
누군가는 때린다, 누군가는 챈다, 누군가는 끌어 올린다, 누군가는 몸을 쓴다. 이런 것은 먼 훗날로 미루어두고, 그저 간단하고 사소하게, 힘없이 공에 전진회전을 주어서 상대 테이블로 넘기기. 넘기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사용하다보면 원하는 곳으로 보내게 되고, 그러다보면 위력도 생기나니.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깨닫기를.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기를.
사랑도 탁구도 사람의 일.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탁구를 되돌아보듯, 인생도 되돌아보는 여유가 있기를. 탁구 고수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듯, 인생도 어찌 보면 종점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를 일.
즐겁고 행복하기위해 탁구는 그저 곁에서 거드는 것, 즐겁고 행복하기위해 연애는 시작되는 것. 사소하게, 힘들이지 않고, 여유로운 연애가 되길, 드라이브 연습이 그러하듯.
댓글목록
vincentyoun님의 댓글
vincentyou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강벽님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심오한 의미를 100%이해하지는 못해도 깨달음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