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자 탁구 시대를 알린 1995년 톈진 세계 챔피언 공링후이(Kong Ling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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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자 탁구 시대를 알린 1995년 톈진 세계 챔피언 공링후이
중국은 궈위에화, 장지아량 이후 더 이상 남자 개인단식에서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1989년 도르트문트(Dortmund) 대회, 1991년 지바(Chiba) 대회, 1993년 예테보리 대회에서 3개 대회 연속 결승에도 오르지 못하고, 동메달을 2개를 딴 게 전부였습니다.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는 위센통(Yu Shentong)이 4강에서 스웨덴 요르겐 페르손(Jörgen Persson)에 1-3(21-11, 10-21, 9-21, 11-21)로 패했고, 1991년 지바 대회는 마웬거(Ma Wenge)가 4강에서 스웨덴 얀-오베 발트너(Jan-Ove Waldner)에 1-3(21-18, 18-21, 21-7, 21-15)로 패했습니다. 1993년 예테보리 대회는 마웬거(/장 미셸 세이브), 왕용강(/조란 프리모라츠) 모두 8강에서 유럽 선수에 패해 노메달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홈 그라운드에서 개최된 1995년 톈진(Tianjin) 대회를 통해 다시 남자 개인단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중국 신예 공링후이(Kong Linghui. 孔令辉)는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 장-필리프 가티엥(Jean-Philippe Gatien/가시앙), 8강 스웨덴 페테르 카를손(Peter Karlsson), 4강 중국 딩송(Ding Song), 결승 중국 류궈량(Liu Guoliang)을 차례로 꺾고 사상 첫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공링후이는 중국이 셰이크핸드 시대를 맞아 스웨덴으로 탁구 유학을 보내 전략적으로 키운 선수입니다. 공링후이는 1991년 탁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처음 출전한 1995년 톈진 대회에서 19살(1975년 10월 18일생)에 곧바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1996년 1월 세계 1위까지 올랐습니다.
중국은 1995년 톈진 대회에서 공링후이, 류궈량, 왕타오(Wang Tao) 등을 앞세워 전 종목 스윕에 성공했습니다. 1981년 노비사드 대회 이후 14년 만의 대기록 달성이었습니다. 이후, 중국 남자 탁구는 왕리친(Wang Liqin), 마린(Ma Lin), 왕하오(Wang Hao) 등이 차례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중국 탁구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댓글목록
calypso님의 댓글
calyps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공링후이가 스웨덴 유학파군요. 결국 이걸 따라해서 김택수를 스웨덴으로 보낸거군요. 김택수를 스웨덴으로 보낼 당시에 쉐이크 공격수를 같이 보냈더라면 우리 나라 탁구가 20년은 빨리 성장했을텐데요.
darongboo님의 댓글의 댓글
darongbo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김택수 감독이 먼저 스웨덴에서 유학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ㅎㅎ
calypso님의 댓글의 댓글
calyps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택수 감독이 먼저 인가요?
김택수 감독이 나이가 훻씬 위네요. 김택수 감독이 먼저 스웨덴에 유학을 간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