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미리 시대 첫 세계 챔피언. 2001년 오사카 세계 챔피언 왕리친(Wang Liq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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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미리 시대 첫 세계 챔피언. 2001년 오사카 세계 챔피언 왕리친
탁구는 2000년을 기점으로 2가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첫째 셀룰로이드(Celluloid) 볼의 지름이 기존 38미리에서 2미리 더 커진 40미리로 바뀌었고, 둘째 점수제가 기존 21포인트 5전 3선승제에서 11포인트 7전 4선승제로 바뀌었습니다. 40미리 볼은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이 끝나고, 그 해 10월 양저우(Yangzhou) 남자 탁구 월드컵부터 곧바로 적용되었고, 점수제는 그보다 1년이 더 늦은 2001년 9월부터 전격 시행되었습니다.
2001년 오사카(Osaka)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볼은 새로 바뀐 40미리 볼을 사용했지만, 점수제는 기존 방식 그대로 21포인트 5전 3선승제가 적용되었습니다. 2001년 오사카 대회는 개인전(남녀 개인단식, 남녀 개인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 한 번에 치러진 마지막 대회였을 뿐만 아니라, 21포인트 5전 3선승제로 치러진 마지막 세계 대회였습니다.
세계 최강 중국 대표 팀은 2001년 오사카 대회에서 7개 전 종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자국에서 개최된 1995년 톈진(Tianjin) 대회 이후 6년 만에 다시 전 종목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1995년 톈진 대회에서 중국의 전 종목 우승을 이끈 선수가 남자 2관왕(단체전, 개인단식) 공링후이(Kong Linghui)와 여자 3관왕(단체전, 개인단식, 개인복식) 덩야핑(Deng Yaping)이었다면, 2001년 오사카 대회는 남자 3관왕 왕리친(Wang Liqin.王励勤)과 여자 3관왕 왕난(Wang Nan.王楠) 이었습니다. 두 선수는 똑같이 혼합복식을 제외한 단체전, 개인복식, 개인단식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세계 대회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왕난은 1999년 에인트호번(Eindhoven)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왕난은 2회 연속 세계 챔피언 등극과 함께, 38미리 시대와 40미리 시대를 제패한 유일한 선수였습니다.
이후, 왕난은 다음 대회인 2003년 파리(Paris) 대회 역시 우승을 차지하며 3회 연속 세계 챔피언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11포인트 7전 4선승제가 적용된 첫 세계 대회에서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와 같이, 여자는 왕난이 볼 크기 변화에 상관없이 2회 연속 챔피언에 올랐지만, 남자는 당시 22살(1978년 6월 18일 생)의 영건 왕리친이 40미리 시대 사상 첫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왕리친은 4강에서 창펭룽을 3-0(21-13, 24-22, 21-14),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탁구 그랜드슬램 달성자 공링후이를 접전 끝에 3-2(11-21, 11-21, 21-16, 21-13, 21-13)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공링후이는 4강에서 마린(Ma Lin)을 3-1(21-14, 17-21, 13-21, 15-21)로 꺾고 결승에 올라 역대 2번째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지만, 왕리친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