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1부.[2001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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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woksusu/221985765407 한국 남자 역대급 명승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1부.[2001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와 달리 한국 남자 탁구는 1995년 이전까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전까지 1969년 뮌헨(Munich) 대회에서 4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한국은 1969년 뮌헨 대회 남자 단체전 2 그룹 경기에서 서독에 이어 2위에 오르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3, 4위 결정전에서 1 그룹 2위 유고슬라비아에 0 대 5 완패를 당해 최종 4위에 올랐습니다. 결승전은 일본이 서독을 5 대 3으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 그룹 최종 순위 - 1. 일본, 2. 유고슬라비아, 3. 잉글랜드, 4. 소련, 5. 헝가리, 6. 덴마크 2 그룹 최종 순위 - 1. 서독, 2. 한국, 3. 스웨덴, 4. 체코슬로바키아, 5. 프랑스, 6. 아일랜드 한국은 1995년 톈진(Tianjin)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세계 대회 남자 단체전 사상 첫 입상(김택수, 유남규, 이철승, 추교성, 김봉철)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세계 대회 단체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룹별 예선, 본선으로 나눠 진행되었습니다. 그룹별 예선은 총 16개 팀을 A 그룹 8개 팀, B 그룹 8개 팀으로 나눠 풀리그로 경기했고, 본선은 각 그룹별 상위 4개 팀이 다시 8강 토너먼트로 최종 우승 팀을 가렸습니다.
한국 남자는 A 그룹에서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루마니아, 러시아, 일본, 스웨덴과 경기를 해 5승 2패 조 3위의 성적으로 8강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8강에서 세이브 형제가 이끄는 벨기에를 3 대 2로 꺾고 4강에 올랐고, 4강에서 왕타오(Wang Tao), 마원거(Ma Wenge), 공링후이(Kong Linghui)가 출전한 중국에 2 대 3으로 패했습니다. 한국은 4강에서 중국에 패한 후, 3, 4위전에서 프랑스를 3 대 2로 꺾고 최종 3위의 성적으로 남자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당시, 한국이 따낸 동메달은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남자 단체전 동메달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1997년 맨체스터(Manchester)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남자 단체전 2회 연속 입상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C 그룹에서 독일에 0 대 3으로 패해 8강 직행에 실패했지만, 16강 유고슬라비아, 8강 일본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4강에서 또다시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4강에서 류궈량(Liu Guliang), 왕타오, 공링후이가 활약한 중국에 1 대 3으로 패했고, 3, 4위전 독일과의 재대결에서 3 대 0 완승을 거두며 세계 대회 단체전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은 1999년 에인트호번(Eindhoven) 대회를 끝으로 세계 대회 7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유남규(Yoo Namkyu)가 은퇴했고, 그 빈자리를 17살(1982년 8월 5일생) 유승민(Ryu Seungmin)이 채웠지만, 결과는 0 대 3 완패였습니다. 한국은 김택수(Kim Taeksoo), 오상은(Oh Sangeun), 유승민이 차례로 출전해, 마린, 류궈량, 공링후이에 차례로 패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