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생각 ] 얼굴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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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년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많은 이에게 짙은 블루 모드의 한 해로 마감하게 된 듯 하다.
대한민국의 현대 경제사를 통틀어 가장 힘든 역경이랄 1997 년의 겨울에도 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렸고 구세군 자선남비의 종소리가 곳곳에서 퍼졌던 걸 기억한다.
1월 말 부터 세모가 멀지 않은 이 시각 까지, 눈을 뜬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고 살아간다.
대중교통 운송서비스 직무의 특성이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더 힘든 것은,
이 상황의 마침표를 언제 찍으리란 걸 아직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
사람들을 처음 대하면, 누구나 상대의 얼굴을 먼저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가 혹은 그녀가 꼭 훈남, 미녀가 아닐지 라도 얼굴에서 풍겨오는 첫인상으로 기억하고 서로간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기억창고에 새겨 놓는다.
버스 운행을 하며 이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이 느낀 것 들 하나를 꼽으라면,
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으며 내 눈에는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만큼 남녀노소 불문하고 열악한 상태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버스 운전대를 잡고서야 새삼스럽게 각인된 까닭은,
가난한 도시빈민의 가정에서 4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헌신한 부모님 덕에 어려움을 덜 느끼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쌍지팡이를 짚고 승차계단을 어렵사리 올라오시는 할아버지,
혼자 힘으로는 들어 올리지 못하여 주변 도움받아 커다란 물건보따리를 힘겹게 올리시는 할머니...
정말 집에서 쉬셔야 하는 분인데...
손주들 재롱 보며 웃음지어야 하는 어르신들 조차 새벽잠 없이 아주 이른 시간, 깊은 심야 할 것 없이 승. 하차 하는 삶을 이어간다.
젊은 청년, 아줌마, 실버 연세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때로 신호를 위반하면서 까지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들고, 지나쳐 버린 정류장에 내려 달라고 떼를 쓴다.
★★
헌데, 이제는 이 모든 이들의 접촉점을 오로지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눈과 목소리 등 제한된 몇 가지 요소로만 대하는 것이 나로서는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언컨택트가 만남의 절대법칙이 되어버린 시기이지만,
이러다가 대면하여 대화하고 온기를 나누는 진정 인간다운 정을 느끼는 것이 아주 특별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까지 가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 마저 든다.
SF 영화 "론머맨" 에서 처럼 사이버 만남으로 서로를 느끼고 사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도 인간 다운 것일까...
★★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가 자문하게 했던 올해를 내 자신은 한편으로 감사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얼굴없는 가수로 불리어지며 라디오에서 소리소문 없이 인기를 얻은,"유리벽" 의 가수 신형원이 또한 생각난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반드시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친밀감을 느끼게 된 이와 오래도록 가까이 하고픈 것이다.
마스크가 실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각정보에만 사로잡힐 위험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닐지.
주변의 마스크맨, 얼굴없는 이들 에게서 그동안 놓치며 살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더 찾아보자.
마음의 창인 눈과의 Eye Contct 에 더하여서 목소리와 그의 몸짓, 고유의 체취 까지 느낀다면 상대 전체를 알아가는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아듀. 2020!
댓글목록
정다운님의 댓글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탁구친구님 안녕하세요?!
현재 탁구친구님께서 처한 상황을 정말로 리얼하게 잘 올려 주셨군요!
탁구친구님께서 하신 말씀 모두 모두 전적으로 동감이고 공감을 합니다.
암쪼록 본문에서도 말쓴하셨다시피 탁구친구님께서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누구보다도 더욱 코로나 예방과 안전수칙을 잘 지키시어 아무일 없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탁구친구님의 댓글의 댓글
탁구친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많은 이들을 접하는 것이 때론 흥미롭기도 합니다.
지칠 때는 아니지만...
코로나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탁구친구님의 댓글의 댓글
탁구친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일상의 생활 낙서를 나눠보는 겁니다.
어느덧 10년 이네요.. 고고탁 과의 인연이?
백하등님의 댓글
백하등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구를 막론하고 눈에 비춰지는 것은 거의 동일 하다 하드라도,
주시하는 포인트와 느끼는 감정, 생각의 깊이는 사람 마다 다를 것이다.
탁친님의 혜안을 접하노라면,내 생각의 거품이 거두어지고 잔잔한 물가를 걷는 기분 이랄까 ---
궂이 화려한 시상대에 오른 영화가 아니어도, 얼마던지 우리 내면의 소리로 사랑과 행복 그리고 기쁨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을 대하면서 거의 시각에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을 겁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도 바뀌어야 할 시대가 됐나 봅니다.
수술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관상쟁이는 장사가 잘 될까요?
참, 당분간 성형수술이 빛을 보지 못 할 것 같네요,^^
이제는 육감을 되살리는 노력이--- 내면의 소리를 듣는 지혜가 필요 하다는 생각이---
탁구친구님의 댓글의 댓글
탁구친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혜안에.. 물가를 걷는.. ㅎ
왜 이러십니까. 부끄러움 참고 생각 나누고픈 욕심 하나로 버티는데.. 쩝.
앞전에 올린 글 언급된 거 처럼,
기존 지식이나 굳어진 판단체계가 도리어 올바른 인식을 방해할 수 있다는 크리슈나무르티의 화두가... 예전에는 그저 수사학적 어구나 공허할 수 있는 철학개념 으로 이해되는 편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요즘.. 더 깊게 실존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보지않고 믿는 믿음..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상충될 것 같은 개념들이 결국은 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교양철학 배울 때 시험공부는 머리 아팠지만 강의는 재미있었던 기억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
탁구친구님의 댓글의 댓글
탁구친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죄송해요. ㅠ
혼자 끄적거리기 수준이라, 말하고픈 걸 쉽게 전달 못하는 겁니다.
저도 원래는 국문학을 꿈꾸는 소년이었는데 이학사(물리)로 학업을 끝내게 되었다는..
그냥 맥락의 느낌이라도 전해지면 감지덕지 입니다.
Vegas님의 댓글
Vega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살아오면서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닥쳐 왔을 때가 가장 힘든 역경의 시간이였습니다.
코비드19에 모두 허덕이면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종료 되기를 희망하지만,
또 어떤 재앙이 우리의 앞날에 도사리고 있을까 부디 코비드가 해결된 후에 오래오래 있다가 찾아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비록 마스크로 덮은 얼굴로 마주하여도,
모든 분들 성탄과 새해를 건강하고 복되게 맞이 하시기를 빕니다! ^^
탁구친구님의 댓글의 댓글
탁구친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베가스 선배님, 마을버스 허덕이며 근무하던 시기에 부천에서 탁구 만남한 것이 아련합니다.
이제 성탄 아침을 맞이하시나요?
서울은 이브날 저녁에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송은 자취가 사라진 듯 해서 많이 가슴 아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