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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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은 제국주의 영국 때문이였습니다
인도를 식민지배한 대영제국은 인접한 버마(지금의 미얀마)를 점령하며 쌀 생산기지로 이용하려 했으나 버마족 과 140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은 대영제국에 저항했고 벵골지역 이슬람 민족인 로힝야족을
버마로 이주시켜 버마인들로 부터 빼앗은 토지를 로힝야족에 나눠줘
쌀생산을 늘리게 됩니다 버마인들에겐 대영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로힝야족을 철천지 원수로 보게됬으며 로힝야족 또한 강제로 이주 당해 노동에 동원됬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웅산 장군에 의해 버마는 독립하면서
버마 전 지역에 있던 로힝야족을 강제로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인근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철저히 분리 탄압하게 됩니다(100년 이나 버마에 살던 로힝야족에겐 버마 시민권이 박탈됨)
여기서 이슬람과격단체가 로힝야족에 접근해 무장테러를 지원하게 되고 이에 버마 군부는 얼씨구나 하며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로 강제 추방하며 탄압을 더 하게 됩니다
독립 직후에 아웅산 장군이 암살되며 군부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수민족과 끊임없이 분쟁을 지속하고 있지만 로힝야족 탄압과 학살에 있어서 만큼은 모든 민족이 일치 단결하고 있다는 현실이 로힝야족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비극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찌여사가 권력을 잡으며 최초로 민주정권이 탄생했지만 군부의 힘이 아직도 강성하여 국회의원의 40%를 장악하고 있으며 수찌여사에게 몰표를 주며 권력을 위임한 140여개의 소수민족들도 로힝야족에겐 변함없이 증오를 보내는 이유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찌여사도 아무런 도움을 못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거 14년이나 가택연금을 당한 수찌여사가 최근에 발생한 미얀마의 군부쿠테타로 인해 또다시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는 일이 벌어져 로힝야족의 비극에 대해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댓글목록
prince님의 댓글
princ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차대전 전후로 발생된 온갖 국제 문제에는 늘 영국이 빌런으로 개입해 있더군요.
진정한 악의 축인건지.
라윤영님의 댓글의 댓글
라윤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43년에도 벵골대기근이 발생하자 영국정부는 소극적인 대처로 200만명 이상의 아사자를 발생시켰습니다
prince님의 댓글
princ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아랍계에 접근해서 영국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아랍국가 건설을 보장한다는 협정을 체결합니다.
동시에 유대계 금융권에 접근해서
전쟁자금 지원을 대가로
유대민족의 독립을 약속합니다.
두개의 상충되는 계약을 해결하지 못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문제를 유엔에 위임해 버렸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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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인 연합국은
세브르 강화 조약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을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3년 뒤 새로 체결한 로잔 조약에는
쿠르드의 독립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영국은 >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던 풍부한 유전지역이
독립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터키,이란,이라크 등의 일부로 강제 귀속됐습니다.
쿠르드족은 1920년대 무장투쟁을 전개했지만
당시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영국은
쿠르드인을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쿠르드인 학살의 시작입니다.
라윤영님의 댓글
라윤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국정부와 처칠은 중국 장제스의 카이로회담 참여를 막으려 했습니다
장제스는 루스벨트 와 스탈린 앞에서 조선반도의 독립을 주장했고
이에 인도와 동아시아의 영국식민지들이 독립을 주장하게 될것을 두려워해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