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탁 동생들 예수님의생애를아시려면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시청하세요
페이지 정보
본문
경외적인가. 그리고 그 모습이 복음서가
우리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바로 그것 아닌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문화의 영적인 기원이나 성서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복음서의 내용만을 충실히 재현할 뿐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정작 영성(靈星)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카메라의 기술적인 감각성에 도취됐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기독교 영화’들을 찾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본 ‘기독교 영화’는 이탈리아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제작한 <마태복음>이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복음서의 신앙을 완고하게 강권하는 편집들로 가득하지만 <마태복음>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일례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는 예수의 너덜너덜한 살과 함께 최후의 만찬에서 ‘이것이 나의 몸과 피다’라고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란히 보이지만 <마태복음>은 그런 예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초월적인 신이나 비자연적인
존재에 매몰되지 않고 세속적인 혁명가의 외피를 입는다. 이 영화에서 예수는 경외와 두려움을 전파하는 ‘그 분’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헐벗은 자의 친구이며, 자신의 과업에 대해 살을 떨면서 고뇌하는 ‘인간’이다. 파졸리니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삼차원적인 성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기독교 문화의 전통이었던 평면적인 성상의 의미를 영화적으로 재해석한다.
예수의 거친 발걸음을 어깨 너머에서 묵묵히 따라가는 카메라, 그리고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고 갈등하는 예수의 모습을 정면에서 장시간
포착한 클로즈업은 성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권유하는 자극적인 선동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 예수의
혁명적인 면모를 보고 싶은 이들은 디비디가게에서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 찾아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저는집에서시청하고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또교회성도님들과시청했는데 여자 권사님들께서 많이들우시던데요.
우리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바로 그것 아닌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문화의 영적인 기원이나 성서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복음서의 내용만을 충실히 재현할 뿐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정작 영성(靈星)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카메라의 기술적인 감각성에 도취됐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기독교 영화’들을 찾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본 ‘기독교 영화’는 이탈리아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제작한 <마태복음>이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복음서의 신앙을 완고하게 강권하는 편집들로 가득하지만 <마태복음>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일례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는 예수의 너덜너덜한 살과 함께 최후의 만찬에서 ‘이것이 나의 몸과 피다’라고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란히 보이지만 <마태복음>은 그런 예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초월적인 신이나 비자연적인
존재에 매몰되지 않고 세속적인 혁명가의 외피를 입는다. 이 영화에서 예수는 경외와 두려움을 전파하는 ‘그 분’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헐벗은 자의 친구이며, 자신의 과업에 대해 살을 떨면서 고뇌하는 ‘인간’이다. 파졸리니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삼차원적인 성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기독교 문화의 전통이었던 평면적인 성상의 의미를 영화적으로 재해석한다.
예수의 거친 발걸음을 어깨 너머에서 묵묵히 따라가는 카메라, 그리고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고 갈등하는 예수의 모습을 정면에서 장시간
포착한 클로즈업은 성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권유하는 자극적인 선동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 예수의
혁명적인 면모를 보고 싶은 이들은 디비디가게에서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 찾아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저는집에서시청하고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또교회성도님들과시청했는데 여자 권사님들께서 많이들우시던데요.
추천0 비추천1
댓글목록
고고탁님의 댓글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신이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사피엔스 48쪽)
저는 종교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유발하라리의 견해를 그냥 제시한 것입니다.
날나리(wantofly)님의 댓글의 댓글
날나리(wantofl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발하라리는 유대인답게 철저하게 예수는 부정하고 과학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맹신하고 있죠~
그가 예언하는 세상은 철저하게 과학이 인류를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언하는 세상을 보면 마치 성경의 요한계시록을 보는 듯 해서 섬뜻 했습니다.
예수를 가장 부인하는 사람의 주장에서 예수의 예언이 있다니~
참 아이러컬하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