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위원장인 이기일(오른쪽 셋째)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발언하고 있다. 위원회가 국민연금 보험료 산정 기준인 기준소득월액을 조정해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보험료가 오는 7월부터 월 최대 3만3300원 인상된다. /뉴시스
오는 7월부터 한 달에 590만원 이상을 버는 국민연금 납부자는 이전보다 월 3만3300원(6.7%) 오른 53만1000원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보험료율 인상으로 월 보험료가 10만원 넘게 상승한 1998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는 것이다. 더 내는 만큼 나중에 돌려받는 금액도 늘어나고 직장인들은 회사가 절반을 내기는 한다. 하지만 납부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임금 인상보다 더 올라 실질 임금이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감당해야 하는 보험료 부담이 예년보다 더 커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3일 ‘제2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 보험료 산정 기준인 기준소득월액의 상한액을 553만원에서 590만원으로, 하한액은 35만원에서 37만원으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최근 3년간 평균액 변동률인 6.7%를 적용한 것으로, 이 기준은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1년간 적용된다. 590만원 이상 소득자의 월 보험료는 49만7700원에서 53만1000원으로 오른다. 기존 상한액인 553만원보다는 많이 벌고 새 상한액(590만원)보다 적게 버는 사람들도 보험료가 3만3300원 미만까지 차등 인상된다. 상·하한액 인상 결정에 따라 265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은 세전 386만9000원으로, 1년 전(368만9000원)보다 18만1000원(4.9%)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지난해 월평균 실질임금은 359만2000원으로 2021년(359만9000원)보다 7000원(0.2%) 줄었다.



박종상 숙명여대 교수는 “보험료를 인상해도 나중에 연금으로 더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기금 재정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문제”라며 “연금 재정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연금 개혁을 더 이상 늦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월 소득의 9%로 정해져 있지만, 소득이 높다고 무한정 높아지진 않는다. 기준소득월액 상한이 590만원이므로 590만원 넘게 버는 사람도 590만원 버는 것으로 간주해 보험료를 징수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하한액 37만원보다 덜 버는 사람들도 37만원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낸다. 올해 인상 폭인 3만3300원은 1998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1998년의 경우 보험료율이 6%에서 9%로 오르면서 보험료가 월 21만6000원에서 32만4000원으로 올랐다.

◇265만명 보험료 올라… 상·하한액 사이 소득자는 변동 없어

이번에 상한액이 상향되면서 590만원 이상 소득자의 월 보험료는 49만7700원에서 53만1000원으로 3만3300원 오른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사용자가 절반을 내므로 1만6650원 더 내는 셈이다. 지역가입자는 인상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소득이 기존 상한액(553만원)을 넘고 새 상한액(590만원)보단 적은 사람들도 월 보험료가 소득에 따라 3만3300원 늘어난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월 소득 590만원 이상 국민연금 가입자는 217만명, 553만~590만원 가입자는 30만3000명이다. 또 작년까지는 실제 소득이 35만원에 못 미쳐도 소득을 35만원으로 간주해 보험료를 내도록 했는데, 올해 기준소득 하한액이 37만원으로 2만원 올라간다. 이에 따라 월 소득 0~37만원 구간에 해당하는 17만3000명의 보험료도 최대 1800원 오른다. 기준소득월액 상한액과 하한액 변동으로 약 265만 가입자가 이번에 보험료가 오르는 셈이다. 나머지는 소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보험료는 변동이 없다.

◇보험료 올라도 연금 재정 영향 도움 안 돼… 기금 재정 악화 가속

기준소득월액이 오르는 만큼 수급연령에 도달했을 때 급여액도 함께 올라간다. 따라서 265만명의 보험료가 인상됐지만 국민연금 재정에는 영향이 없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5년째 동결 상태인데, 그 사이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는 가속이 붙은 상태다. 즉 앞으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 세대들은 급격히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는 세대들은 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월 발표된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는 2199만명, 수급자는 527만명이다. 2050년에는 가입자(1534만명)와 수급자(1467만명) 수가 비슷해지고, 2060년에는 가입자(1251만명)보다 수급자(1569만명)가 더 많아진다. 결국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2003년부터 5년마다 향후 70년간 재정의 장기 추이를 전망하는 것이다. 5년 전 4차 추계보다 기금 소진 시점은 2년, 적자 전환 시점은 1년 당겨졌다. 4차 추계 때 기금 고갈 시점이 3년, 적자 전환 시점이 2년 앞당겨졌는데,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5년 전 연금 개혁 패싱한 대가… 보험료 부담 폭증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4차 재정 추계에서도 국민연금 재정 안정에 대한 경고가 나왔지만, 연금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보험료율 인상 부담은 폭증했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한 보험료율이 4차 추계 당시에는 16.02%였는데, 이번에는 17.86%로 올라갔다. 5년 전에 연금개혁을 했다면 7.02%포인트만 올리면 됐지만, 지금은 8.86%포인트를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상 부담이 26.2% 늘어난 셈이다.

이창수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지금처럼 손을 계속 놓고 있으면 세대 간 신뢰가 깨지고 갈등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라며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연금개혁은 수년이 걸리는데, 졸속안을 내놓기보다는 한 발짝씩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는 “전문가들 중심으로 촉박하게 정해진 시일 내에 답을 내놓길 요구하는 구조도 문제”라며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2~3년간 전문가와 국민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개혁안을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