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 -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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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까닭은 자유를 되찾은 그날의 환희를 경축하는 것뿐 아니라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광복을 위해 자신의 편안함과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을 기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저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갖지 않아서인지 일제의 통치 아래에서 자신을 수그리고 목숨과 삶을 부지한 이들과도 이날의 감격을 함께 했으면 싶습니다.
그들이 모멸감 속에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그들의 삶을 일궈나갈 수 있는 세상을 그들에게 되찾아 주기 위해서 독립지사들이 투쟁한 것일 텐데 후대의 우리가 그들을 능멸하고 배척하는 것이 옳기만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어쩌면 살아서 남는 이들이 겨레와 나라를 지속시켜 나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에 독립투사들이 자신을 초개와 같이 불사를 수 있지 않았을까도 합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과 그분들의 얼이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의 가슴에 꽃처럼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하덕규 작사, 작곡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피어 피어
댓글목록
라리사님의 댓글의 댓글
라리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몰랐었는데 딸랑두쪽님의 말씀을 듣고 검색하니까
기타 함춘호로 나오네요.
《진달래》 는 ‘시인과 촌장’ 의 2집에 수록되었는데 이때 함춘호 씨가 참여하셨네요.
※ 아래는 namu.wiki 에서 펌한 것입니다.
市人과 村長.
대한민국의 포크 밴드. 1981년 하덕규와 오종수가 듀오를 결성한 후, 서영은의 단편소설 '시인과 촌장'을 따와서 팀명을 짓고 1집 '시인과 촌장'을 발표한다. 오종수는 결혼과 취업 등의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 1985년 하덕규는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나 시인과 촌장 2기를 결성하게 되고 1986년 2집 '푸른 돛'을 발표하고 함춘호의 부재 중에 1988년에 조동익, 이병우(어떤날) 등의 도움을 받아 3집 '숲'을 발매했다. 개인활동 후에 1997년 재작업을 선언한 후 다시 함춘호와 함께 2000년 4집 'The Bridge'를 발표했다.
라리사님의 댓글의 댓글
라리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덕규 씨는 목사가 되셨다고 하던데요.
《 가시나무》를 들으면 크나큰 고뇌를 지닌 분일 것 같다는 느낌은 들던데...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평정을 얻으셨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