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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올림픽 구기종목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탁구계의 위기 프로에서해결책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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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현 선임기자 kimmin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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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남규 탁구대표팀 감독이 경기중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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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뭐든지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사 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sp20120924172518124870.htm&ver=v002^|^[스포츠 레전드] 한국 최초의 올림픽 구기종목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탁구계의 위기 프로에서해결책을 찾아야“^|^^|^^|^0

그렇다면 특이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가장 좋은 것, 제일 넓은 것, 하늘 같이 높은 것, 티끌보다도 작은 것.

이런 사안들을 용어로 나타낼 때는 반드시 앞에 한자어 ‘최(最) 자’가 들어간다.

최고 최저, 최상 최하, 최초, 최후, 최장 최단….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탁구 금메달리스트 유남규(44)의 이름 앞에도 물론 이 ‘최 자’가 붙는다.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구기종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 2년 전인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유남규, 김완, 안재형)을 석권해 2관왕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전력이 있어 촉망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아시아권에서는 몰라도 세계 무대에서는 어린 나이인 20세에 불과한데다 세계랭킹도 10위권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금메달을 딸 자신이야 물론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운도 제게 많이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김기택 선배님이 저에게는 까다로운 상대들을 많이 이겨 주셨거든요.”

그의 말을 해설하자면 이렇다.

김기택은 준준결승에서 당시 세계랭킹 2위였던 스웨덴의 발트너를 3-2로 이겼는데 이것이우선 유남규에게는 1차적인 행운이었다.

준결승에서도 김기택은 유남규가 전형상 불리한 헝가리의 티보르 클람파를 3-0으로 간단히 이겨 그의 ‘짐’을 결정적으로 덜어준 셈이 됐다는 얘기다.

반면 유남규는 준준결승 상대인 스웨덴의 페르손을 3-1로 물리친 뒤 준결승에서는 특별한 주무기가 없는 스웨덴의 에릭 린드를 3-0으로 꺾어 결승에 올랐는데 결승에서 ‘은인’이나 다름 없는 선배 김기택에 3-1로 역전승을 거둬 대망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던 것.

김기택이 준준결승에서 발트너에 패했거나 준결승에서 클람파에게 져 이들 중에 한 선수가 유남규의 결승 상대가 됐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는 결론이 된다.

“제가 발드너나 클람파를 이기지 못할 거야 없지요. 누구를 만나도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김 선배님이 제 힘을 많이 덜어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껏 선배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유남규는 단식 금메달과 함께 선배 안재형과 콤비를 이뤄 출전한 복식에서는 동메달을 따냄으로써 한국 최초의 올림픽 구기종목 금메달리스트라는 ‘공식기록’ 외에 한국 최초의 올림픽 ‘멀티 메달리스트’라는 ‘비공식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탁구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서울 대회에서 한국은 이 외에도 여자복식의 양영자-현정화 콤비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남자단식에서는 김기택이 유남규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하는 강세를 보였다. 금 2, 은 1, 동 1.

한국 스포츠가 서울올림픽에서 금 12, 은 11, 동 10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하는데 탁구가 톡톡히 일조를 한 셈이다.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된 전성기

일일이 예를 들 수는 없지만 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어렵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 이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정상에서 내려오거나 정반대로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정상의 자리에 스스로 만족하거나 도취해 더 이상 발전해 나가려는 의지를 잃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남규는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약관 20세의 나이로 정상의 맛을 본 뒤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강세와 함께 10년이 넘도록 한국 탁구 에이스의 자리를 고수했다.

유남규의 스포츠 스타로서의 ‘가치’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금메달을 딴 뒤에 주위에 계신 많은 지도자 선생님들과 선배들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의 한결 같은 말씀은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씀이었지요. 그 말씀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제40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친구이자 후배인 현정화와 커플을 이뤄 일궈낸 혼합복식에서의 우승. 단식과 단체전의 패권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치밀한 컴비네이션과 전략이 필요한 혼합복식 우승으로 유남규의 존재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해가 바뀐 1990년에도 낭보는 이어졌다.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에서 선배 박지현, 후배 김택수와 팀을 이뤄 북한을 5-4로 누르고 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4년 전인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선배인 김완, 안재형과 함께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 된데 이어 아시안게임 2연패라는 쉽지 않은 기록을 일궈낸 것이다.

북한 선수들과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91년의 제41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김택수와 함께 출전한 복식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과시했다.

이어 93년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스웨덴 예테보리) 복식 3위,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복식 은메달, 95년 제43회 세계선수권대회(중국 텐진) 단체전 3위,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복식 3위, 97년 제44회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3위. 서울올림픽 금메달과 같은 ‘지상의 영광’을 다시 누리지는 못했지만 88년 이후 거의 10년이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세계정상권을 유지한 것은 탁구의 세계 최강을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선수들에게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빛나는 전과가 아닐 수 없다.

▲소속팀 해체와 현역 생활 마감

1997년 말 국내 경제를 공황 상태로 몰고 갔던 이른 바 ‘IMF 사태’는 ‘탁구선수 유남규’의 인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제 소속팀이 동아증권 아니었습니까. 국내 경제 상황의 영향을 가장 예민하게 받는 업종이었지요. IMF 사태가 터지고 외환 위기가 닥치니까 제일 먼저 제가 소속한 탁구단이 해체되더군요.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셈이지요.”

팀이 없어졌다고 당장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도 없는 일.

“팀이 없어지고 나서 한 1년 동안 여기저기 체육관을 옮겨 다니면서 개인 연습을 했지요. 하지만 제가 소속팀이 없다 보니까 마음이 잡히지도 않고 운동이 제대로 되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99년 5월인가 종별선수권대회를 마친 다음에 현역 생활을 접었습니다.”

부산 영선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8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한 이후 21년. 탁구선수로는 최연소 국가대표(15세)의 기록에다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한 수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소속팀의 해체로 ‘무직자’가 된 그를 반겨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국내 경제상황이 조금씩 낳아진 탓인지 그 해 제주 삼다수 탁구팀이 창단됐습니다. 저는 게임도 뛰고 후배들 지도도 하는 플레잉 코치로 입단을 했지요. 하지만 이미 은퇴를 했던 입장이어서 게임을 한 건 별로 없고요. 후배들 가르치는 데만 전념을 했습니다.”

후배들과 함께 뛰기도 하고 공을 치기도 하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호프집’을 찾아 후배들과 건배를 하기도 하고.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그 나름의 훈련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다른 효과가 안 나타나는 거에요. 참 곤혹스럽더군요. 회사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창단 5년째인 2005년에 들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종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전국대회를 무려 4개나 휩쓴 데 이어 이듬해인 2006년에는 신설된 ‘탁구 왕중왕전’의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팀을 명문의 반열에 합류시켰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최고의 명문인 삼성생명을 능가하는 최강팀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2007년 1월이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때까지 선수들 지도방법을 놓고 총감독님과 조금 의견차이가 있어왔거든요. 그것이 2007년에 들면서 좀더 심해지기에 나이가 어린 제가 물러나는 게 좋겠다 싶어 팀을 나왔습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도 생각나고요.”

한창 팀 성적이 좋아 명문 팀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마당에 갑자기 물러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고 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얘기다.

▲’수난의 세월’ 시작

하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갈 만한 팀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2007년 6월에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이 됐지만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다시 ‘무직자’가 돼 1년이 넘게 울분으로 세월을 낚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지난 일들이 정말 주마등처럼 생각이 나더라고요. 야속한 사람도 있고, 또 제가 어리석었다는 자책감도 들고…. 그러고 있는데 2010년 1월에 전 소속팀인 제주 삼다수에서 1년 계약의 감독을 맡을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선뜻 받아들였지요.”

1년이라는 ‘시한부 감독’이긴 했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최고 권위대회인 종별선수권대회 우승의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1년이 금방 가더군요. 제주 삼다수와의 재계약이 여의치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데 탁구선수시절의 선배이신 이유성 대한탁구협회 부회장님의 주선으로 2011년 1월부터 런던올림픽 대표팀 전임감독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 전임감독제는 대한탁구협회가 런던올림픽에서의 메달획득을 위해 처음 도입한 것으로 남자감독은 유남규, 여자감독은 탁구협회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현정화였으며 연봉은 1억 원이었다. 결과는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남자는 단체전 은메달, 여자는 ‘노메달’로 끝났는데 여자 감독을 맡았던 현정화는 런던올림픽을 마친 뒤 곧바로 전무이사까지 내던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현정화 감독의 미국행으로 탁구협회는 지난 12일, 전체 이사회를 열어 전무이사에 ‘사라예보 세계제패의 주역’인 정현숙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을 선임했다.

유남규 역시 올림픽이 끝난 마당에 하는 일도 없이 봉급을 받는 것이 미안해 협회에 사표를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한국 탁구의 장래를 위해 조속한 프로화가 시급

런던올림픽을 다녀온 소감을 물었다.

“제가 감독을 맡았던 남자팀이 은메달을 따긴 했지만 만족하거나 자만해서는 절대 안되리라고 봅니다. 다행히 준결승에서 홍콩을 만나서 쉽게 이겼지 일본을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거든요. 감독을 맡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은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그리고 4년 뒤의 리오 올림픽에 대비해야 할 겁니다.”

노메달로 끝난 여자부에 비하면 은메달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자부까지는 제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고요. 남자부의 경우만 따지자면 우리 선수들은 나이가 많거든요. 아마 이번 런던대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뒤를 받쳐줄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것이 걱정입니다.”

이번 런던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는데 주역을 맡은 선수는 오상은(36), 주세혁(33), 그리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31) 등 3명.

주세혁과 유승민은 그렇다고 쳐도 오상은은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마당이어서 그에게 다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입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얘기였다.

“우선 중국의 경우를 보면 이번 런던대회 2관왕인 세계랭킹 1위 장지커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주전선수들이 20대 초반이거든요. 최근에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일본의 주전선수 가운데는 심지어 10대 선수들까지 있습니다. 물론 우리 선수들 중에도 유망한 10대 선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선수들을 어떻게 하면 이른 시일 안에 중국이나 일본에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재목으로 성장을 시키는가 하는 점이겠지요.”

이를 위한 바람직한 대책은.

“프로화를 하는 겁니다. 그 내용을 지금 한꺼번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프로축구나 야구처럼 전국을 돌면서 홈앤드어웨이식으로 게임을 하게 하면 선수들이 스스로 자기 몸관리도 하면서 경기력을 증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탁구의 프로화가 정착돼 있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임에 몰두하는 선수 많아 걱정

경기 외적으로 요즈음의 후배 선수들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고 있을까.

“모든 종목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개의 선수들이 운동에 대해서 절실한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연습을 열심히 안 하면 내가 죽는다. 이번 게임에 지면 나는 끝장이다. 뭐 이런 당찬 정신자세가 보이질 않는다는 말입니다. 의지력이 없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여튼 저희들이 현역 시절에 운동하던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궁금하다.

“왜 없습니까, 있지요.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릴께요. 게임말인데요, 컴퓨터 게임이요. 고참선수나 어린 선수나 할 것 없이 휴식시간만 되면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고 다른 일은 아예 망각을 해버릴 정도입니다. 심각한 수준이에요. 일일이 방문을 두드리면서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아마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해냈을 겁니다.”

▲좋은 아내 만난 게 자랑

그는 한국 나이로 40세가 되던 2007년 12월1일, 핸드백 디자이너인 7살 아래의 윤영실씨를배필로 맞아 백년가약을 맺었다.

3개월만 있으면 만 5년째가 되니 신혼살림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어쨌거나 결혼생활이 어떤지 궁금하다.

“아주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마음씨도 착하고, 회사 일도 잘 하고, 또 얼굴도 그런대로 괜찮고요. 거기다 예쁜 딸까지 낳아주니 더 고맙습니다.”

예쁜 딸의 이름은 예린. 지금 5살이다.

아내 윤영실씨는 본래 금강제화의 손꼽히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현재는 이탈리아의 토탈브랜드 ‘만다리나 덕’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만다리나 덕’은 지난번 런던올림픽 때 탁구는 물론 역도, 펜싱, 체조, 유도, 레슬링, 양궁, 태권도, 배드민턴 등 9개 종목 선수 100여명의 선전을 기원하며 이들이 런던 현지에서 편리하게 등에 지고 다닐 수 있는 최신 디자인의 백팩(배낭)을 기증하기도 했다.

선수단은 런던으로 출발하던 지난 7월25일, 기증받은 백팩을 메고 인천공항에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윤씨의 갸륵한 마음이 고마워 필자가 평소 많은 탁구인들로부터 들었던 다음의 몇 마디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김형, 남규가 잘 한 게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딱 두 가지만 알려 드릴께요. 뭔지 아세요.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거하고 마누라 잘 얻은 거.”

유남규 남자탁구대표팀 감독 약력

▲생년월일 : 1968년 6월4일 ▲학력 : 부산 영선초등학교(4학년 때 탁구시작)-부산 남중-부산 광성고(3학년 때 서울올림픽 금메달)-고려대 대학원(석사)-경희대 대학원(박사) ▲가족 : 부인 유영실씨(2007년 12월 결혼)와 딸 예린(5세) ▲소속 실업팀 : 동아증권 ▲지도자: 제주 삼다수 ▲주요 전적: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식, 단체전 금메달, 88년 서울올림픽 단식 금메달, 복식 동메달, 89년 제40회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우승,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복식 동메달. 93년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 복식 3위,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복식 은메달, 95년 제43회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3위,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복식 동메달, 97년 제44회 세계선수권대회 복식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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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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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탁님의 댓글

no_profile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기사에 "옥의 티"가 있는데요. 여자국가대표 감독은 현정화가 아니라 강희찬입니다.</p>
<p>&nbsp;</p>
<p>하여튼 유남규감독님이야 말로 한국탁구계의 레전드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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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卓而空님의 댓글

no_profile 樂卓而空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성실하게 탁구외길을 살아왔네요.</p>
<p>본받은 후진들이 많았으면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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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님의 댓글

no_profile 정다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고고탁님께서 올려주신 귀주한글 잘 보고 갑니다,,,,</p>
<p>역시 유남규 감독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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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아빠님의 댓글

no_profile 동호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근데 여자 게임에는 외 현정화 감독이 나왔나요?</p>
<p>강희찬 감독은 어디에 가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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