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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탈출] 눈이 내리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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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그 더러운 파리 지하철에 대한 기억이 정류장을 막 벗어날 즈음, 거기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

 

그날 아침,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남자는 잠에서 깼다. 매우 매우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들고, 누가 건 전화인지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를 확인한 남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받을것인가 말것인가. 받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지금 어딜 가야하는데, 저녁 늦게 돌아올거 같다는

 

동네 아는 형.

 

그런데, 오후에 약속해 둔 일이 있어서 그걸 해줘야 하는데, 대신 좀 해달라는. 나중에 한잔 산다는.

 

자세한 내용은 문자로 보낸다는. 문자가 왔다. 윗여울에 가서 마당에 돌 깔을것.

 

남자는 심드렁했다. 아침 늦게 일어나서 아점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오후에는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뒹굴 뒹굴 하려는

 

계획을 접어야 하는 아쉬움보다, 운전을, 그것도 트럭을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 마뜩잖았다.

 

....


남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스무살이 되던 해 남자는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이 도시로 왔다. 서울 촌놈이 이 도시의

 

대학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남자가 외로움을 공부하기에

 

필요충분한 조건이었다. 두세달여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남자를 잡은것은, 동아리였다. 5월이 되면 각 동아리는 대대적으로

 

신입회원을 모집하는데, 남자는 거기서 한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ACME, 탁구동아리.

 

덕분에 남자는 대학 생활에 적응해갔다.

 

남자는 공학을 전공하고,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졸업할 무렵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회사를 1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편입을 한 것이다. 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남자는 몇가지 자격증을 취득했다.

 

부모님의 황당해 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남자는 스스로 벌어서 추가로 대학을 다녀야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다시

 

취업을 할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남자는 훌쩍 여행을 떠났다. 무려 2년 간의 긴 여행이었다.

 

1년은 국내를, 1년은 외국을, 마치 거지 꼴로 동가식 서가숙하며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야말로 저렴한 여행이었다.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가 선택한 일은 조적공이었다.  남자에게는 조적공 기능사 자격증이 있었다.

 

조적공으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몸져 누우셨다.

 

...

남자는 오히려 자신이 아는 형에게 술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6개월 후 남자는 아는 형에게 술을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남자가 시동을 걸었다. 트럭이 무거웠다. 뒤에 실린 넓적돌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는 형이 알려준 주소로 가서

 

공사를 시작했다. 집은 거의 완성되었고, 마무리 중인듯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마당 입구부터 현관까지

 

넓적돌로 징검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 그리 춥지 않아야 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쌀쌀했다.

 

하지만 혼자 삽질해서 적당한 구덩이를 파고 무거운 돌을 들어 자리를 채우는 고된 일인지라, 남자의 몸은

 

쌀쌀한 날씨 따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청바지에 땀이 차고, 가슴골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이 느껴졌다.

 

셔츠를 벗어야 했다.

 

언더 아머로도 아령 대신 들어올린 벽돌의 갯수 만큼 많은 섬세한 근육의 존재를 모두 다 숨길 수는 없었다.

 

해질무렵이 되어서야 일은 거의 마무리 되어갔다.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석양에 흩날리는 짙눈깨비를 바라보다가

 

남자는 문득, 예전 여행 중에 들렀던 파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무심코 노래 한구절을 흥얼거렸다.


Tombe la neige

Tu ne viendras pas ce soir

...

 

파리, 예술과 문화의 도시라는, 누구나 가보고 싶어한다는 선망의 도시, 그러나 남자의 뇌리에는 그런 환상적인

 

파리의 기억 대신 정말 더러운 파리의 지하철이 스쳐지나갔다.

...

Mais tombe la neige

Impassible manege


노래가 끝나갈 무렵, 남자는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정원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거기, 파리의 추억을 걷어내며 그녀가 서 있었다. 이제 일을 마치고 돌아온듯 한.

 

약간은 당황스러워 하는듯한 모습. 남자는 그녀를 힐끗보고 나서 계속해서 일을 마무리지어갔다.

 

그녀는 공사중인 남자를 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이내 집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커피 잔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헤이즐넛 향이 나는 방금 내린듯한 연한 원두 커피였다.

 

남자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삽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고, 후후 불어가며 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붉은 석양이 드리워졌다.

 

남자는 따뜻한 커피만큼이나 그녀의 따듯한 마음을 느끼는듯했다. 그리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커피잔을 잡은 남자의 손을 보며, 손이 저렇게 고운 남자도 있나하는 생각을 했다.

 

 

    탁구러버 표면을 복원시켜서 회전력을 살리는 영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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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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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행복하게님의 댓글

no_profile 지혜롭고행복하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선생님의 글 너무 잘 읽고 있는 탁구초보 1인입니다.</p><p>가장 최근&nbsp;글 "인연"을 읽으려는 찰나~ 새로운 글이 또!</p><p>살아생전 처음으로 댓글 일등해야겠다는 욕망이?ㅎㅎ</p><p>앞으로도 쭉~~~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p><p>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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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님의 댓글

no_profile 시냇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눈이 나리네 2편을 기대하며 들어 왔더니, 따악 글이 올라 와 있네요.</p><p>탁구 관련 영화를 한편 찍어도 될 듯한 이야기 입니다.</p><p><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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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뽀님의 댓글

no_profile 가라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냉정과 열정 사이가 생각나네요.. 남자 작가와 여자 작가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서로의 얘기를 풀어가는...</p><p>늘 글 잘 읽고 갑니다.</p><p><br /></p><p>감사합니다.<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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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님의 댓글

no_profile 정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잘 보았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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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고님의 댓글

no_profile 넘기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인연은&nbsp; 살며시 나몰래 날적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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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네님의 댓글

no_profile 윤슬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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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님의 댓글

no_profile 지구별여행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글 잘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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