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돌파] 플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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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탁구장으로 향했다. 탁구장에 아무도 없으면 코치랑 이런 저런 이야기나 나누어볼까 하는 나름 계획도 있었는데.
가보니 오호 열성파 B가 벌써부터 레슨을 받고 있다. 와우~ 요새는 이렇게 일찍 탁구장에 온단 말인가. 흠, 예전엔 이렇게까지 빨리 오진 않았는데, 어허 탁구장에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것인가. 허허 땀 흘리며 이리저리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B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젊은 나이라 체력도 좋고, 탁구를 좋아하는 마음, 초보를 배려하는 따스함 어느 것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좋은 친구. 다만, 가끔 오버하거나 옆으로 새는 게 옥에 티라면 작은 티랄까. 뭐 그 정도는 애교 수준이므로 패쓰.
땀을 뻘뻘흘리며 레슨을 마친 B가 휴게실에서 놀고 있는 내 옆으로 온다. 얼른 물 한 잔 건네준다. B는 레슨 후라 힘이 많이 들텐데도 싱글 벙글이다. 매우 매우 기분 좋게 레슨을 받았다라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하도 그 표정이 밝기에 오늘은 뭘 배웠는지 물었더니, B의 대답이 플랜 B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는데. 잉? 벌써 그런걸? 하는 생각에 그래 플랜 B를 뭘 어떻게 하라던가? 하고 되물으니 B가 대답하길, 게임을 할 때 자신의 플레이가 상대에게 잘 먹히지 않으면, 그러니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런 경우를 헤쳐나가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비상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B의 비상 계획은 뭔가하고 물으니 B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다는 대답 ㅠㅠ. 오우 대략 난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듯.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더니, 드디어 훈련 시작, 이 허름한 탁구장이 열탁 모드로 돌입하여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데, 문이 열리더니 처음 보는 분이 탁구장으로 들어오시네. 해서 내가 달려나가 맞이하니 연세 지긋하신 분인데 오늘 이 탁구장에 처음 오셨다고 하시고 4부 치시는데 여기서 몇 게임 좀 했으면 하신다는 말씀. 그래서 비슷한 연배의 4부 치는 회원 분과 주선을 해 드리고 다시 휴게실로 돌아와서 B를 비롯한 회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잠시 뒤 그 4부 회원님이 경기를 마치고 휴게실로 오시더니 아까 그분과 게임을 했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게임이 꼬여서 자신이 졌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혹시 기인이 이 허름한 탁구장에 왕림하신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얼른 가서 쉬고 계신 그분에게 한게임을 더 하시라고 바로 청하고 메인 테이블로 안내해 드린 후 이번에는 B가 상대로 나서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 구장 4부 회원님이 지셨다는 말에 뭐가 좀 이상한 느낌이 내 발목을 잡는지라 경기 테이블 근처에 자리 잡고 경기를 관전하게 되었다.
으흠, 역시 뭔가 있는 분이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4부 님이 펼치는 플레이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B의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테이블에서 1~2m 정도 떨어져서 기가 막히게 막아내는 것이, 로빙도 아니고, 네트 바로 위도 아니고, 적당한 높이로 이리저리 회전이 먹은 공을 B의 코너 코너를 깊숙이 찌르며 넘기시는데. 이런 스타일 흔하지 않은데 오늘 B에게 좋은 공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넘어오는 공을 처리하기가 어느 정도 부수까지는 상당히 까다롭다고 생각할 것인데. 아하~ 이런 플레이에 아까 우리 구장 4부 분이 당황하신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B는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좀 더 면밀하게 경기를 관전해보니, 과연 B가 고전 중.
호쾌한 드라이브를 보유한 B 선수가 그 무기를 가지고도 고전을 하다니. B는 상대가 넘겨주는 공에 대해 자신도 1m 정도 떨어져서, 포핸드 쪽으로 오는 공은 포핸드 드라이브로 공격하고, 백핸드 쪽으로 오는 공은 약한 백핸드 드라이브로 넘겨주는 상황. 가끔 돌아서서 공격하지만 그래도 별 효과 없는 듯.
B가 어떻게 공격하던 일단 상대가 너무나도 B의 드라이브 공격을 잘 받아내고, 넘어오는 공은 B 테이블 깊숙이 떨어지고, 전진 회전뿐만 아니라 백 쪽 코너에서 올라오는 공의 경우 옆회전도 잔뜩 있는지라, 이런 공에 대해 B는 더욱 날카로운 드라이브 공격을 하려다가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공이 조금 나쁘다 싶으면 살짝 연결로 넘겨주는데, 그러면 상대방이 달려들어 드라이브 공격을 해오거나 스매시를 날려버리니 그걸 막아내기도 힘든 상황. 점수 역시 B는 매 세트 마다 몇 점 씩 끌려가다가 결국 한 세트도 얻지 못하고 3:0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B의 표정을 보니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한 멍한 표정. 흠 그도 그럴 것이 공격은 주로 B가 가열차게 했고, 상대는 주로 적당한 높이의 공으로 수비성 공을 넘겼을 뿐인데. 그냥 보자면 상대가 넘겨주는 공은 그다지 위력이 없어 보이는데 왜 B가 끌려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 B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B의 멍 때림은 잠시, B는 얼른 휴게실에 계시던 노교수님과 경기를 주선하면 자신이 심판석에 앉네. 역시 그간 많은 훈련과, 경기를 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B가 탁구 기술 뿐만 아니라 멘탈에서도 성취가 있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자신보다 한참 고수인 노교수님과 경기가 진행되면 B의 입장에서는 교수님이 과연 상대를 어찌 대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터이니.
그리하여 경기가 진행되는데, 1세트, 상대의 플레이에 노교수님도 잠시 당황 하시는 듯. 상대가 테이블에서 1m 정도 떨어져서 공을 넘기니, 교수님도 그 위력 없는 공을 보다 여유롭게 공격하기 위해 1m 정도 떨어져서 공격을 하시는데. 그런데 교수님 연세가 있으신지라 B처럼 가열찬 드라이브 공격을 하시기엔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를 듯. 그래서 강한 드라이브 보다는 적당히 코스를 노리는 드라이브로 공격을 하시는데, 상대가 워낙 잘 막아내니 교수님이 당황하는는 듯. 아니나 다를까 1세트에서 교수님이 공격하시다가 실수를 종종하시는데. 더더군다나 상대에게 핸디를 주고 경기를 하시는지라, 한 번의 실수는 점수 차가 더 벌어지니 부담감 백 배이실테고.
가끔 교수님의 한방 드라이브가 시전되면 점수가 되기도 했지만, 매번 한방 시전을 불가능인지라, 적당한 드라이브 공격에 대해 상대는 테이블 1m 뒤에서 막아내니 지금과 같은 공격으로 상대를 뚫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이는 상황. 교수님 입장에서는 경기가 안 풀리는 듯한 1세트인데, 그렇게 어어 하다가 교수님이 1세트를 내주게 되었다. 경기가 더 재미있어 질듯 보이는데 과연 2세트는 어떤 플레이가 펼쳐질지.
드디어 2세트. 교수님의 플레이에 살며시 변화가 보인다. 교수님이 테이블에 가깝게 붙어서 플레이하시는 걸로 작전의 변화를 모색하신다. 백쪽으로 오는 공은 쇼트로 밀어버리고, 포핸드 쪽으로 오는 공은 여유있게 적당한 드라이브를 걸어버리시는데. 연결이 매우 오래 지속된다. 체력 싸움도 아니고, 두 분 연배가 얼추 비슷해 보이는지라 연결이 오래되면 두 분 다 체력 소모가 크실 것인데. 흠, 이런 형태로 경기가 계속 진행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2세트 몇 포인트가 지나가자 역시 교수님의 작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교수님이 다른 작전을 구사하실 것이라는 나의 예측이 적중하는 순간이랄까. 교수님께서 힘만 들고 점수 안되는 플레이를 하실 리 없을 터. 교수님이 테이블에 바짝 붙으신다. 교수님은 상대가 넘겨주는 공을 일단 한번은 백핸드나 포핸드 쇼트로 밀어버리되 반대 방향으로 밀어버리니 상대는 이동을 해야하는 상황. 이동하며 공을 넘기니 공의 정확도와 회전이 조금 떨어지고, 그런 공을 교수님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밀어버리거나 반대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걸어버리니. 이제 교수님은 움직이지 않고 상대만 움직이게 되는 상황. 또, 포핸드 드라이브 공격을 하실 때도 상대방 포핸드 쪽으로 휘어나가는 드라이브를 시전하심으로서 상대가 움직여야 하는 거리를 늘리고, 때때로 테이블 가운데로 넘어오는 공은 상대방 몸통 쪽으로 드라이브 공격, 어떤 경우에는 슈트 드라이브. 교수님의 작전은 상대의 움직임을 더 많게 하거나, 상대가 타구 방향을 예측할 수 없도록 공격 방향을 속여가며 플레이하시는 것 인듯. 그리고 쇼트로 밀었다가 드라이브로 걸었다가 하는 변화를 통해 상대가 좌우 뿐만 아니라 앞뒤로도 움직이도록 만드는 작전. 좌우로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작전은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잘 구사하지만, 앞뒤로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시전 가능한 것인데 역시 교수님.
흠, 점점 경기가 교수님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상대는 수비에 지쳐 공격으로 전환을 해보지만, 실수를 하거나 교수님의 강한 디펜스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결국 3:1로 교수님 승리. 심판 보던 B도 뭔가 얻은 것이 있을 터.
경기 후 두 분은 서로 경기 잘했다며 음료수 한잔 하시러 휴게실로 고고.
휴게실에서 교수님과의 경기 정말 재미있었다고 하시며, 모처럼 오늘 탁구 다운 탁구를 즐기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보니 이 분 아직 체력이 남아 있으셔서 게임을 더하셔도 될 듯싶어 내가 한게임 그리고 마지막 대미로 K와 한 게임을 치루셨다.
오늘의 주인공께서는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임을 즐탁하시고 휴게실로 오시어 교수님과 우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데, 알고 보니 교수님보다 연배는 조금 아래이시나 구력은 비슷하다는. 어떤 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시는데 근무지를 따라 이 도시로 이사 오신지 얼마 안되셨고, 먼저 근무하던 지역에서 강 4부 정도의 실력이시라는. 이 도시에 오셔서는 그동안 이 구장 저 구장 돌아다니며 운동할 구장을 물색하시며 탁구장 물이 어떤지 관찰해 오셨는데
댓글목록
남자는한방님의 댓글
남자는한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div>ㅎㅎ 뒤에서 받아내는걸 주력으로 하는분들에게는 그냥 간단하게 변화를 심하게 주면 되죠 ㅎㅎ 양사이드로 공을 드라이브로 보내면서 왔다갔다 짧게 또는 길게 왔다갔다 이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어요 ㅎㅎ. 물론 이럴려면 드라이브의 완벽한 제구는 필수이지만요.</div>
건우님의 댓글
건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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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잘 보고 갑니다..</p><p>저도 아직 하수인지 게임이 안 풀릴때는 어찌해야 할 지 몰라 헤메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p><p>느끼는 바가 크네요...<br /></p>
칼잡이 夢海님의 댓글
칼잡이 夢海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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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큐가 아니고 픽션 입니까? 픽션이면 필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요.^^</p><p><br /></p><p>맞아요. 저도 항상 플랜 B, 플랜C의 필요성을 느낍니다.</p><p>평소 제 플레이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상대가 있고, 제 주력 플레이들이 먹히지 않는 상대가 있습니다.</p><p>그럴 때는 플랜B로 넘어가는 것이 맞습니다.</p><p><br /></p><p>문제는 플랜B도 안 먹히고 플랜C도 안 먹히고 이거 쓰다 저거 쓰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질 때가 많다는 것이 함정~^^<b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