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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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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임태주 시인의 어머님의 편지글입니다.

읽다가 가슴이 뭉클해서 모셨습니다.

저한테도 이 글과 동일한 어머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십니다. 

아랫글처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지만, 어머니 생각만 하면 서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중1때부터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라고 부른 것도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 내일 시간나면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책을 읽으면서 

올 여름 휴가 못간 것을 보낼려고 합니다.

이 책 SF 소설인데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SF하고는 그 격이 다릅니다.

=======================================================================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 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 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 꽃들이 무리 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천국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 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 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 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어미를 용서하거라.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어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망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0904_4.jpg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 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탁구러버 표면을 복원시켜서 회전력을 살리는 영양제


추천2 비추천0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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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nyeoman님의 댓글

no_profile ssunyeo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복거일류 수구 꼴통들 글은 보지 마시옵소서..</div>
<div>전두엽에 기스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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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걷는다님의 댓글

no_profile 나는걷는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주인장님..너무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p><p>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 해옴을 느낍니다.</p><p><br /></p><p>이 글을 복사해..지인들과 같이 마음 나붜보렵니다.</p><p><br /></p><p><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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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탁님의 댓글

no_profile 고고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역사"라는 말은 저에게 고향과 같은 말입니다.</p><p>"나그네"의 어감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불행한 느낌이 드는 단어입니다.</p><p>제목이 너무 멋있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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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온님의 댓글

no_profile 챔피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참.....</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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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공사님의 댓글

no_profile 공생공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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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초님의 댓글

no_profile 행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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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집념님의 댓글

no_profile 열정과집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힘이 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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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꾸리님의 댓글

no_profile 뽕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p>


감사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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