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잘친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서(6)
페이지 정보
본문
6.
“다소 당돌한 물음이긴 하지만, ‘왜 탁구를 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두 분은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인의 말은 답이 안 될까요?”
“탁구를 왜 치냐는 질문에 ‘웃지요’라고 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김상용 시인이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엔 ‘웃지요’라고 답한 것은, 인생에 대한 수많은 회의와 번민, 깊은 사색과 성찰에서 영글어진 초월과 달관의 답변인데, 탁구에 대한 그만한 사색과 성찰을 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 그대로 받아 읊기에는 버거운데요.”
“‘좋아서 친다’는 답이 일반적 답변이 되지 않겠습니까. 좀 더 풀어서 표현하면, 처음엔 건강을 위해서 ‘의지적으로’ 치기 시작했는데, 탁구 친구 또는 탁구 라이벌이 생기면서 ‘좋아서’ 치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탁구에 ‘빠져서’ 치게 되지요. ‘빠져서 치는 탁구’는 자연스레 ‘탁구 중독증’을 낳고요. 그렇게 탁구를 치다보면, 1년이 2년 되고, 2년이 5년 되고, 5년이 10년, 20년으로 늘어나겠지요.”
“‘탁구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어서 탁구를 계속 쳐왔다’는 답은 어떻습니까? 몇 년 전 우연히 만났던 연로한 생탁인 한 분에게서 들었던 이 말은 나의 생활탁구 20여년 여정을 갈무리하는 데 아주 유용한 지침 같은 것이 되었어요. 그 분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지난 시절 내가 걸었던 탁구의 길을 되돌아보니, 나는 좋아서, 빠져서, 중독되어 탁구를 쳤지만, 탁구는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다듬어준 점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숨겨진 나의 나쁜 성격을 탁구가 보여줌으로써 나를 성찰의 길로 이끌어주기도 하였습니다. 탁구는 또한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살았던 삶의 진실을 각성시켜 줄 뿐 아니라, 문자로만 알고 있었던 삶의 지혜를 온 몸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 의미를 생환(生還)시켜 주기도 했어요. 탁구가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던 탁구친구들을 통해 반면교사(反面敎師)와 진면교사(眞面敎師)를 제공해주기도 했지요.”
“우리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만, 최언니가 지적한 점을 고려한다면, 탁구를 잘친다는 말의 의미에는 탁구를 통해 자신을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빚어가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겠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아무리 안쳐도 일주일에 얼추 열 시간 정도씩은 탁구를 치는 편이지요.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되지 않은 단일 취미에 그 정도의 시간을 바친다는 것은 굉장한 인생 투자라고 봐요. 자신이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탁구가 자기 인생살이나 됨됨이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가끔씩 헤아리며 탁구를 치는 것이 탁구를 잘치는 태도라고 생각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