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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탁구, 그 가난한 권력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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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 여러 동우인님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흥미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엔 탁구인들의 행태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에 대한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탁구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돈이 많고 돈을 잘 번다고 항상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실제로는 절대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 언제나 지갑을 안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몇 천원이나 몇 만원의 돈을 빌린 다음 영영 갚지 않습니다. 빌려준 사람이 어렵게 상환요구를 해도 곧 준다고만 하고 입을 닦아버립니다.

어떤 탁구인은 탁구를 치고 나서 요금이나 책정된 일비를 상습적으로 안 냅니다. 몇 시간이고 오래 즐기면 일비를 내지만 한 시간이나 30분이면 그냥 공을 만져본 거라 치부하며 슬쩍 가버리는 거죠. 탁구장 운영자 입장에서는 뭐라 말하기도 곤란한 것이어서 심적으로는 대단히 괴로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탁구장 관장은 술버릇이 좋지 않았습니다. 자꾸 실수를 하게 되고 탁구장 분위기를 흐려서 회원과 자신 모두에게 고통을 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보라고 하면 나는 몇 밤을 새워서 수 십 페이지라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다른 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나 자신부터 그런 병폐와 잘못들에 자유롭지 못한데 여차하면 누워서 침을 뱉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모든 현상의 이면을 흐르는 좀더 객관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나 흐름이겠습니다.

탁구계에 이런 일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어떤 탁구인들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오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그러한 나의 의견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동우인님들의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기예에는 우열이 있으며 여기에는 권력이 개입됩니다. 당구장에서는 당구 잘치는 사람이 최고이고 기원에서는 바둑 잘 두는 사람이 최고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탁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 편 세상의 모든 집단이나 모임 속에는 드러나기도 하고 숨어 있기도 한 역관계와 권력관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민주적일 수도 있고 조폭 같은 서열적일 수도 있지만 역관계와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탁구계에서는 이 양자의 권력관계가 다른 어느 곳보다 애매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든 탁구를 잘 친다는 것은 다른 기예에 비해 쉽게 무시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오만하면 ‘탁구 좀 잘 친다고 까분다’ 는 욕을 먹습니다. 다른 기예도 마찬가지겠지만 탁구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예가 가지는 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 곧 권력관계가 매우 애매하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는 탁구회관이나 동우회나 클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간이나 관계들은 직장모임, 동창 선후배 모임, 기타 다른 스포츠 모임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합니다. 이 집단을 끌고 가는 집행부나 이 집단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힘은 언제나 한계를 갖습니다. 이 역시 권력관계를 애매하게 하는 특징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떤 사람들은 크게 오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탁구고수나 탁구에 관련된 공간을 ‘별 것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정도 공간에서는 편하게 행세해도, 혹은 자신이 우두머리나 주요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을 거라 믿는 거죠.

불행한 일은 이것이 어떤 탁구고수에게도 똑 같은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오판을 한 탁구고수는 탁구공간이 별게 아니니까 탁구 잘 치는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 공간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과도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탁구계에는 무서운 것이 없거나 적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서운 게 없으니 처음 입문하는 사람은 초심자로서 얼마나 조심하고 오래 적응해야 하는 가라는 긴장을 적게 가집니다. 다른 공간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덜한 것입니다. 또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무시하고 별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래 있다 생각하고 이런 무의식이 서로에게 전제되어 있으니 조만간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건 어지간히 받아들이지만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상상외로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갈등의 근본을 파보면 바로 이 오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주부가 남자 고수하고 탁구를 쳤는데 남자 고수는 그 주부가 탁구를 쳐주었음에도 고수 대접을 안 하고 음료수 한잔 안 샀다 불평을 했습니다. 반대로 그 주부는 어떻게 남자가 여성을 대하면서 매너가 그 모양이냐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주부는 탁구계에서 여성으로서 보호받고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성은 탁구계에서 고수에 대한 대접이 소흘하다고 불평을 합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어떤 오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탁구장 관장과 회원간의 오판, 코치와 레슨을 받는 사람간의 오판, 고수와 하수의 오판 등이 다 그것입니다.

탁구계에 이런 오판이 많은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탁구계가 아직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해보기로 하죠.

전에도 말했듯 우리 사회는 급속한 성장을 경험한 사회이며 이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 수준이 과도한 채로 균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서민으로서 고된 일상을 살면서도 누구나 자신이 잘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 로또 열풍과 게임방 문화가 발생합니다. 또 대학생들은 사회진출을 앞두고 낮은 대우를 받는 노동자나 샐러리맨이 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대신, 그리고 그 현실에서 오랜 인내심으로 고통을 견디겠노라 결심하는 대신, 좋은 기회나 아이디어를 통해 심지어 반칙이나 허세를 통해 한방을 노립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자기에 대한 평가나 권력의식이 강렬합니다. 포기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사회가 이런 만큼 돈이 많고 부유하며 권력이 강한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굴해지고 조심스러워집니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한국 같은 과도기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가장 중대한 힘이자 가치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샐러리맨은 의사나 사업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골프클럽의 멤버가 되려다 끝내 실패한 경험을 얘기해 줍니다. 바등거려 보았지만 잘 안 되었으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포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낮은 곳에서는 얘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탁구계는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 낮은 곳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무도 탁구계에서는 머리를 낮출 생각이 없습니다. 당연히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탁구계의 오판은 이래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닐지언정 나는 이와 같은 물적인 상황이야말로 사태의 핵심을 관통하는 요소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앞서 말한 탁구의 미래는 이 지점에서도 중대한 시사점을 드러냅니다. 만일 탁구가 보다 대형화 전문화 된다면 사람들은 이제 탁구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조심하게 되지요. 돈 많다고 자랑하면서 잔머리나 굴렸다간 며칠을 살아남지 못합니다. 고수라고 거만해지면 비난조차 듣지 못합니다. 아마 점잖게, 그렇지만 잔혹하게 무시당하겠지요. 여성이라고 지나친 공주병을 과시하거나 하수이면서 고수를 괄시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욕을 먹기 이전에 그냥 웃기는 일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러나 이 역시 슬프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민중은 인륜의 파탄에서부터 출발한다’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중은 본래 이기적이고 비굴하고 때론 사악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민중만이 자신의 고된 삶을 관통하며 진정한 화해와 평화와 품위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 명의 민중이며 서민입니다.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면 말 그대로 샅샅이 인륜의 파탄입니다. 쫀쫀하고 소심하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고 조그만 손익에도 쩔쩔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탁구가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며 돌아오는 밤이면 하루를 반성하는 생각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약해도 나는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탁구인들의 소중함이자 자랑입니다.

하여 나는 자본과 돈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바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양보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약간의 이익을 포기하며 더 커다란 의미의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가난한 권력의 파노라마 속에서 우리는 끝까지 한 떨기의 연꽃을 피우려 애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서민이고 민중이자 한 명의 아마추어 탁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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