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소사2. 이질 러버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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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질 러버란 무엇이었나?
“이질 러버”라는 말이 간간히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질 러버”란 존재하지 않으며 돌출 러버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해 주십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이질 러버”가 언론상에 자주 등장하던 시기에 이질 러버란 단순한 러버의 종류를 지칭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탁구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무시무시한 플레이 스타일, 즉 하나의 탁구 전형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용하는 용구만 이질 스러웠던 것이 아니고 총체적인 플레이 자체가 매우 “이질스러웠다”고 해야겠지요.
원래 “이질”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쉐이크 블레이드 양쪽에 동일한 종류의 러버를 붙이지 않고 서로 다른 종류의 러버를 붙였기 때문에 쓴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쪽 면은 평면 러버를 붙이고 다른 쪽 면은 돌출 러버를 붙였다면 그것이 바로 이질이지요. 그러나 이처럼 서로 다른 러버를 붙이는 것만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하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 월간탁구 운영자이셨으며 오랜 세월 대탁 이사님으로 재직해 오신 박도천 이사님께 전해 들은 내용에 제 의견을 가미해 작성한 것임을 먼저 밝혀 둡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예전에는 탁구 러버의 색에 대해서 아무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색깔의 러버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선수들이 평면 러버와 돌출 러버를 전면, 후면에 각각 다르게 붙이면서도 두 러버의 색을 동일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포핸드는 항상 평면 러버, 백핸드는 항상 돌출 러버 하는 식으로 구분해서 사용한다면 문제가 안 될 텐데, 문제는 그 상태에서 라켓을 돌려가면서 한번은 포핸드에서 평면 러버로 반구하고 그 다음에는 라켓을 돌려서 돌출 러버로 반구하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까다롭고 어려운 구질이 바로 롱핌플 러버의 구질인데, 그것도 양쪽면을 같은 색으로 붙이고 라켓을 휘리릭 돌려가면서 서브, 리시브를 해 대면 당해낼 선수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ITTF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서 중국 선수들의 독주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ITTF에서는 이질 러버를 금지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의 이질러버 공세에 대항할 ITTF의 1차적인 해법은 핌플 아웃 러버 전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탁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여러모로 실익이 있는 제안이었죠.
우선 탁구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돌출 러버가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탁구 대중화에 지장이 있다는 것도 그 근거 중 하나였구요,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중국 탁구계의 이질 러버 사용을 막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유럽 탁구계의 몰락이 뻔한 일이고 그렇게 되면 전반적인 유럽 탁구계의 침체가 오게 되며 그 결과 ITTF의 여러 활동이 축소될 것이라는 점이 그 주요한 배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돌출 러버 자체를 사용금지 시키는 것은 아시아권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년간 돌출 러버를 사용해서 훈련해 온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선수 생명까지 좌지우지할 매우 치명적인 결정이었으며, 전체 엘리트 탁구계의 미래를 놓고 장기적으로 보면 당시 분위기로 봐서 돌출 러버의 퇴장은 결국 유럽 탁구의 계속적인 완승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하여 한,중,일 삼국의 관련자들은 연합하여 한 목소리로 돌출 러버의 퇴장을 막았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의 이질 러버 플레이와 더불어 우리 한국에서는 숏핌플 러버를 주축으로 한 전진 속공형 선수들이 다수 길러 지고 있었고, 우리 나라 코치진들의 판단으로도 유럽 탁구를 이길 방법은 돌출 러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등장한 결정이 블레이드 양면에 다른 색깔을 사용하도록 하자였습니다.
만약 서로 다른 색을 사용한다면 기본적으로 어느 면이 돌출 러버인지 정도는 알고 시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서로 비슷한 색, 예를 들면 한쪽은 진빨강, 다른 한 쪽은 연빨강을 붙이고 서로 다른 색이라고 우기면 이를 가려내기가 또 어려울 수 있겠죠. 그러므로 모든 러버의 색은 검정과 빨강, 두가지로 하고 서로 다른 색을 양쪽에 붙이게 하는 것으로 결론 짓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돌출 러버의 사양에 대한 디테일한 규제도 완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산뜻한 초록색 러버나 귀여운 핑크색 러버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은 결국 중국의 이질러버 전형의 등장 때문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당시 어떻게 보면 향후에 또 다시 돌발될 수 있는 유럽 탁구계의 돌출 러버 퇴출 주장이 앞으로는 또 다시 재기될 수 없는 문제로 확정되어지고 지금처럼 다양한 롱핌플 아마츄어 동호인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게 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동안 롱핌플 러버의 사용자들을 대회에서 퇴출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체쪽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이전에는 롱핌플 러버 사용자는 아예 생체 대회에 참가가 불가하도록 하는 규정이 상당히 오래 동안 유지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엘리트 탁구계 입장에서 보면 돌출 러버 자체의 퇴출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우리 나라 탁구계 인사들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고 그 결과로 현재까지 한국의 선수들이 핌플 러버를 사용해서 연습을 하면서 유럽의 파워 탁구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 중인 것을 보면, 생체쪽에서 돌출 러버를 막고자 한다는 것은 표리부동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아 선수들의 신체 조건을 감안할 때 돌출 러버가 허용되어야 유럽과 경쟁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돌출 러버 사용자들이 많아지면 탁구 인구 확장에 지장이 있으니 허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 말이지요.
사실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돌출 러버 사용자들이 탁구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반면 초보자들에게는 탁구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현실적으로 확정되어진 현재의 ITTF 규정 내에서 슬기롭게 탁구 발전을 모색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