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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라친 배 위에서 노래소리 들린다
페르샤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띄운 그 입술에 노래소리 드높다
동편저쪽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우리다
다시 못 볼 그 옛날에 올가 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라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1958년 독일 연방 콩쿠르와 1960년 독일
사랑하는 여인을 물속에 집어 던진 비운의 영웅 - 스텐카 라진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래 소리 들린다. /페르시아의 영화의 꿈 다시 찾은 공주의 /웃음 띠운 그 입술에 노래 소리 드높다. /돈 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 손 공주로다 무리들은 주린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의 볼가 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 라진 장하도다! 그 모습.’
노랫말의 주인공 스텐카 라진(1630~1671)은 러시아 남동쪽 돈 강 근처의 부유한 ‘카자크(Kasak, 자유인)’집안에서 태어났다. 카자크는 개간한 땅에 농사를 짓거나,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사는 무리였다. 그 틈에 태어난 스텐카 라진의 원래 이름은 ‘스테판 라진(Razin, Stepan)’이었다. 하지만 그는 풍족함을 버리고 가난한 카자크들과 어울리는 바람에 ‘스텐카’라는 속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 바실리 수리코프, '스텐카 라진', 1906,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박물관 소장.
17세기 중엽 러시아는 여전히 농노제가 시행되는 낙후한 봉건국가였다. 농노들은 영주의 직영지에서 부역을 하며, 남는 시간에 소작지를 경작했다. 그나마 수확의 절반 이상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다. 이중삼중의 수탈을 견디다 못한 농노들은 몰래 도망쳐서 카자크에 합류하였다. 그런 와중에 카자크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간섭이 심해졌다. 그러자 카자크들은 발끈하였고, 마침내 1667년에 무력봉기를 일으킨다.
한편, 스텐카 라진이 공주를 물속에 던진 것을 두고, 오늘날의 ‘로맨스 중독자’들은 말들이 많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도 하고, 공주를 익사시킨 영웅의 잔혹함을 탓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시 페르시아 공주가 ‘미인계’를 자초해 지도자의 눈을 흐리게 한 첩자였다는 설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스텐카 라진이 공주를 물속에 집어 던진 까닭에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2007.11.14 )
"동편 저쪽 물 위에서"라는 가사는 "돈 코?(돈강 유역의 코사크족 혹은, 카자크족)의 무리에서"라는 가사가 와전된 가사인 듯 하다고 한다.
여름에는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데 지금처럼 늦가을이나 겨울만 되면 시베리아와 러시아의 대지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70년대 이연실이 이 노래를 부를때 기관에서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1917년 혁명 후, 내전기 백군이 7년에 걸쳐 가장 치열하게 적군에 저항한 격전지로 유명하며, 솔로호프의 노벨상 수상작인 <고요한 돈 강>의 실제 무대이기도 하다. 그 후 정부의 집중투자로 대규모 공장, 특히 트랙터 공장이 건설되면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중에 200여일에 걸친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나, 제대로 성한 건물하나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다.전쟁후 대대적인 복구작업에 착수해 1950년대에는 세계 제1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볼가강 하류 볼시키시에 유럽최대의 수력발전소가 완공되었다. 값싼 전력을 이용하려는 각종 중화학공업, 군산복합체도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러시아의 핵심 공업 지역중 하나로 각광을 받았다.1961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볼고그라드(Volgograd)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